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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11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2009년 서양철학사를 수강하며 작성한 레포트를 정리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인간은 왜 사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출발점인 동시에 전체를 끌어가는 핵심개념이 바로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의도된 행위는 어떤 목적을 지향하며, 이 목적이 성취되면 이 목적은 다시 더 높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돼 그 위의 목적에 이바지한다. 이렇게 목적과 수단의 지속적인 연쇄관계의 계단을 계속 밟아 올라가면, 더 이상 다른 것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 이것이 다름 아닌 인생의 가장 좋은 것(최고선)이자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eudaimonia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으로 행복에 대한 통념들을 검토한다. 첫 번째 견해는 행복은 쾌락 혹은 즐거움에서 성립한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짐승들에 알맞은 삶이라 욕망의 노예가 될 뿐인 삶이라고 평가한다. 두 번째, 사람들이 행복의 내용으로 생각하는 명예를 중심에 놓는 삶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삶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 역시 피상적이기에 진정한 행복의 내용이 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우리에게 고유한 것이며 쉽게 박탈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명예의 경우 명예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더 결정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한다. 그 다음 아리스토텔레스는 간단하게 언급하지만, 을 버는 삶을 언급하며 부는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서만 유용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행복의 후보에서 배제된다.


 이런 통념적인 삶이 위에서 논증하듯 진정한 행복의 내용이 되기에 부족하다면, 진정한 행복이 되려면 갖추어야할 조건들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성취가능성, 완전성, 자족성을 논변한다.


1) 행복은 만약 그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라면, 인간적 행위로 성취할 수 있거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2) 행복은 항상 바로 자기 자신 때문에 선택될 뿐 자신 아닌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는 않고 동시에 다른 모든 것들은 바로 이것을 위해 선택되는 단적으로 완전한 목적이다.

3) 행복은 그것만으로 삶을 선택할 만한 것으로 그리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끔 만드는 자족적인 목적이다.


 행복을 최상의 좋음으로 정의한 후 이렇게 정의된 최상의 좋음으로부터 성취가능성, 완전성, 자족성까지 도출해 낸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기능으로부터 인간의 행복을 정의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좋음이 수행해야 할 혹은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는 기능에 비추어 정의된다는 사실로부터 도출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아니면 잘 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에서부터 인간의 행복을 정의하려 하는데, 그것은 다른 식물 동물과 구분하는, 이성이라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인간의 기능이 이성과 일치하는 혹은 적어도 이성과 분리되지 않은 영혼의 활동이라는 것을 상정한다면 뛰어난 사람의 기능은 이것들을 잘 그리고 훌륭하게 행하는 것이어서 각각의 기능은 그것의 부류에 고유한 탁월성에 따라서 수행될 때 잘 수행되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좋음은 탁월함()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즉, 좋은 혹은 뛰어난 하프 연주자가 하프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듯이 훌륭한 인간도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이성적 삶을 잘 살아내는 사람이다. 인간 고유의 기능을 그 탁월성에 따라 영혼이 활동해 낼 때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좋음()에 이르는 것이며 행복하다는 것이다.


 인간 고유의 이성적 기능을 행복과 좋음()에 연결시킨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은 자칫 인간 전체의 다른 기능을 배제할 우려의 여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2002)에서 그려지고 있는 모든 감정이 통제되는 미래도시를 우리가 행복한 사회, 인간다운 사회라고 규정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을 프로크루스테스와 같은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




 나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과 탁월성에 따라 인간 고유한 좋음과 행복에 도달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인간의 성적 충동과 소외를 가지고 행복의 내용을 즐겨 바라본다. 나는 인간이 이성으로 인해 분리되어있는 실재로서의 자기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감과 같은 소외를 느낀다고 보기 때문에 이성의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만으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본다. 여기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성적 행위가 이와 같은 불안감과 소외를 극복하고 행복해지는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와도 같은 추상에 대한 에로스가 아니라, 구체적 개별에 대한 에로스이다.

Posted by Econom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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