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에 관한 유력한 설명들


1) 중국 등 세계화의 효과

2) 로봇과 같은 기술혁신

3) 독점의 심화

4) 부동산 보유자의 몫 증가




Four main potential explanations for the decline in labor’s share of U.S. national income:


1) China

2) robots

3) monopolies

4) landlords.

https://www.bloomberg.com/view/articles/2017-04-24/cracking-the-mystery-of-labor-s-falling-share-of-gdp




제도와 정치의 변화를 배경으로 한 노동자의 협상력 약화도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위의 글은 일단 주류경제학의 최근 연구들만 요약한다.


크루그먼은 이 중 앞의 3개를 함께 설명하고 있지만, 4번째는 차원이 다르다.

한편, 들롱 등은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률을 높이는 고압경제가 나타나지 못했다는 것도 지적한다.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에 대한 요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1) 세계화 요인

     : 중국으로부터의 수입과 함께 2000년대 중반 이후 크게 늘어난 해외직접투자 효과

2) 기술과 독점 문제

     : 상대적으로 낮아진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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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산업경제학을 수강하면서 작성한 글입니다.



인재개발: 노동생산성 향상과 돌파구 찾기

 

 

 글로벌 인재포럼의 발표들을 보면, 정부와 기업 모두 인재개발과 노동교육에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발표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학문이 복합적이고 통합적으로 발전될 필요성이 드러나고 있어서 혹은 정보화시대에 따른 변화의 결과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가 요구되고 있다고 제시되었다. 이것은 시기를 구분하기를 좋아하는 학자들의 선호 때문에 그렇게 발표가 되었던 것일까. 나는 그런 시기 구분에 큰 흥미도 없을뿐더러 그런 시기 구분에 관한 연구를 할 능력도 없다. 다만, 나는 어째서 최근 들어 정부와 기업 모두 인재개발과 노동교육에 적극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생각한 경제적인 외부환경의 원인은 크게 장기불황에 빠진 경기 침체와 돌파구 찾기(breakthrough) 경쟁의 가속화이다. 이 둘은 이윤율 하락이라는 경제적인 원인에 기인한다. <그림 1>을 보면 미국과 유럽의 이윤율은 1970년대 위기를 거치며 하락했다가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전환을 거쳐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윤율이 신자유주의 전환을 거쳐 상승했다고 전체 경제가 위기의 국면을 극복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왜냐하면, 제조업에서 이윤율이 다시 상승하여 실물경제가 회복된 것이 아니라 금융기업의 이윤율이 상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 2>에서 이윤율을 금융기업과 비금융기업으로 나누어보면, 양자 사이의 편차가 커서, 비금융기업은 시기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데 비해, 금융기업은 1970년대 위기의 영향으로 거의 제로이윤율 수준에 육박했다가 1980년대 이윤율의 급상승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에서 나타나는 1980년대 이후 이윤율의 상승은 <그림 2>에서 보이듯 금융부문이 주도한 것이었다.



 이는 <그림 3>의 이윤몫의 변화를 살펴보더라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미국경제에서 1980년대 들어 제조업의 이윤몫이 두드러지게 하락하는 반면, 금융 관련 부문의 이윤몫이 많이 늘어나 2000년이 되면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는 부문이 됨을 알 수 있다. 실물경제의 이윤율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기업의 이윤율 상승은 경제 위기의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금융기업들의 도산과 그로 말미암은 경제적 침체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실물경제의 이윤율은 왜 하락하였는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그림 자료를 인용한 뒤메닐 · 레비의 자본의 반격에서는 이에 대한 원인으로 노동생산성의 발전 속도 둔화를 꼽고 있다.


 노동생산성의 발전 속도는 지난 포드주의(fordism) 혹은 테일러주의(taylorism)와 같은 과거의 혁신 방법으로는 이제 극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노동생산성의 발전 방법을 위한 창의적 인재가 주목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자의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형태는 3의 길이라고 표방하며 과거와 달리 노동의 유연성과 동시에 실업자들의 노동교육을 강조하며 새롭게 변했던 사민주의의 정책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은 글로벌 인재포럼에도 끊임없이 나왔던 주제들이다.


 두 번째로 이윤율 하락에 따라 기업들은 가격경쟁의 형태와 다른 돌파구 찾기 경쟁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생산성을 발전시키거나 가격경쟁으로는 이윤이 늘어날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방법은 경쟁에서 상대 기업을 제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즉 돌파구가 될 만한 다양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돌파구 찾기란 새로운 제품, 새로운 직원 채용 전략, 새로운 기술 등, 이 기업으로 하여금 다른 기업들에 대해 우위에 설 수 있도록 해주는 혁신적이고도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돌파구를 찾는 데 성공하게 되면 경쟁이 일어나는 소위 싸움터의 지형이 달라진다.


 돌파구를 통해 치고 나간 기업은 경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노력이 기업으로 하여금 시장에서 선두 주자로 나설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은 이 기업을 쫓겠지만, 그러는 동안 선두 기업은 또 다른 돌파구를 통해 앞으로 치고 나가 더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다른 제품보다 월등히 뛰어난 아이폰과 같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냈다고 해보자. 이 기업은 이 제품에 높은 가격을 매기거나, 높아진 수요에 대응해 동일한 기계를 더 오랜 시간 돌림으로써 더 높은 이윤율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이윤율이 하락한 장기불황의 경기 침체는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 교육의 강조와 숙련된 노동자에 대한 요구를 증가시키고, 더불어 시장에서 선두 주자가 되어 이윤율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노동력의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두 측면 모두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 노동력의 양적, 질적 발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이윤율 하락의 위기를 공급 측면에서 대응하고 있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수요 확대를 위한 기업과 정부의 노력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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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질 미학(Aesthetic qualities of commodities)은 가능할까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저명한 사회학자들은 상품미학 비판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주로 미학이 다루고 있는 욕구와 감성을 자본주의 내에서 사회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본주의 상품생산이 지향하는 것은 교환가치인데, 이런 상품 미학이 인간의 미적 행위를 조직하여 우리들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상품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정형화된 기호가치 때문에 구매되고 소비되며, 이 속에서 인간의 욕구는 진정으로 충족되지 않고 오로지 가상적으로 충족되어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의 소비에 몰두하게 된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



 이런 상품미학들은 교환가치에 지배되는 사용가치를 중심으로 두고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나는 이렇게 특수한 형태의 사용가치가 아닌 사용가치 그 자체를 분석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가치와 멀리 동떨어진 독립된 사용가치를 생각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결국 내가 고찰하고자 바는 교환가치와 분리된 사용가치 자체가 아니라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에 지배되는 양식에 초점을 맞춘 여러 연구와는 다르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가치 갖는 일반적인 위치이다.


 

□ 사용가치의 미학


 상품은 질과 양의 두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유용한 물건은 수많은 속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다양하게 유용할 수 있다. 한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으로 하여금 사용가치가 되게 한다. 이 유용성은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주어지고 있으며, 그 상품체(physical body of the commodity)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다. 같은 사용가치를 가진 상품은 같은 비율로 교환될 수 있을 것이나 이 경우에는 아예 교환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교환은 서로 다른 사용가치에서, 즉 질적으로 서로 다른 상품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질적으로 서로 다른 상품들, 예컨데 1개의 시계와 2kg의 쌀이 교환된다. 이렇게 교환가치는 우선 양적 관계, 즉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로 나타난다.


 그런데 교환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가치가 다른 누군가에게 유용해야 할 것이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써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들기는 하지만 상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는 사용가치를 생산할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즉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하고, 그 생산물을 사용가치로 쓰는 사람에게 교환을 통해 이전해야 한다. 나는 여기에 미학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상품의 사용가치가 유용하다고 판단하는데에는 취향 판단, 즉 미적 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물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유용하지 못할 수 있다. 바로크 음악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바로크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론적으로 아무리 설명한다 할지라도 그의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그에게 바로크 음악이 담긴 CD와 그의 시계를 교환자고 해보자. 그에게 아무리 많은 바로크 음악 CD를 준다고 할 지라도 그는 절대 교환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싼 가격에, 설사 무료로 그 CD를 준다고 해도 그는 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각 개인들의 취향과 선호는 경제학에서 수요로 나타난다.


 이제 경제학의 공급의 측면에서 사용가치의 미학을 바라보자. 상품을 생산하는 자들은, 그들의 상품이 교환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상품의 사용가치를 생산해야한다. 상품이 사회적으로 유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각기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개인들이 모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타당한 취향을 전제해야 한다.


 이것은 칸트가 말한 미적 판단의 이중성과도 연결될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이 튤립이 아름답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취향판단에 근거해서 튤립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다른 누군가도 이 튤립이 아름답다고 판단할 근거가 있다. 개별적이고도 특수한 취향판단은 마치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보편성에 근거해서 우리는 상품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싸이는 '강남스타일'이란 노래를 만들면서(대중음악의 보편적인 미학적 기준들에 맞게) 이것이 대중들에게 만족을 줄 것이라 예상하고 상품 시장에 내놓았을 수도 있다.




 처음에 언급했던 상품미학 비판이론을 통해 내용을 더 보충하자면 '사용가치의 객관적인 미적 약속'을 통해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교환은 사용가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용가치의 약속을 통해서, 상품을 둘러싼 '아름다운 가상'에 의해 발생한다. 상품을 둘러싼 미적 가상은 어떤 약속, 예를 들자면 사랑, 행복, 자유, 지성 등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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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남양유업 불매 운동에 대한 경제학적인 의견

 

 

 일반적으로 정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상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졌을 경우 소비자는 소비를 줄여 기업에게 신호를 보낸다고 설명한다. 더 싼 비용으로 더 싼 상품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기업은 경쟁에서 도태된다. 이제 일반적으로 경제학이 잘 다루고 있지 않는 상품의 질을 놓고 이야기 해보겠다(A. Hirschman, “Exit, Voice, and Loyalty.”, 1970).

 

 상품의 질이 하락할 경우 소비자는 불만이 생긴다. 이런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가격이 올랐을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비자는 소비를 줄인다(Exit). 둘째, 소비자는 자신의 불만을 목소리를 내어 표출한다(Voice). 현재 남양유업 사건에 대해 인터넷에서 공론화되는 방식이 두 번째의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다루고 있지 않는 정치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기업이 소비자의 불만 사항을 개선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우리가 소비를 줄이지 않은 채 인터넷상에서 불만사항을 이야기 할 경우 그 파급력은 매우 소소할 수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재무제표에 나온 수익감소를 볼 경우에야 그 위기를 제대로 실감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불만사항을 목소리 내지 않고서 소비만을 줄인다면 그 기업이 어떤 점을 개선해야 될지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 불만사항을 내는 목소리를 수습하기 전에 소비가 너무나 빠르게 줄어 기업이 파산한다면, 그것은 기업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나의 생각에는 남양유업이 이번 사건을 올바르게 해결하는 모범이 되어야 다른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 또 남양유업이 소비자들의 불만사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잘못 된 관행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이번 남양유업의 경우 상품 자체의 질이 하락한 것은 아니나, 기업이 잘못된 방법으로 수익을 올려 소비자들의 불만과 원성이 높아졌다. 이것은 공정성의 문제이다. 폭설이 내린 후 철물점이 눈삽의 가격이 오른다면, 이는 공정한 일인가 불고정한 일인가 실험참가자들에게 질문을 한 결과 응답자의 82퍼센트는 폭설이 내린 상황에서 눈삽의 가격을 15달러에서 20달러로 올린 것은 불공정하다고 대답했다(Kahnemann, Daniel, Jack Knetsch, and Richard H. Thaler, “Fairness as a Constraint on Profit-Seeking : Entitlements in the Market.”, American Economic Review 76(4), 1986). 철문점은 판매할 눈삽을 사기 위해 비용을 더 들이지 않았는데도 고객들의 불운을 이용하려 들었단 것이다.


 기초적인 경제학에 따르면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 당연한데, 사람들은 공정성에 의문을 둔다. 실제로 홈데포(The Home Depot, Inc)1992년에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한 후 그러한 반감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합판 가격의 상승분을 상당 부분 자체적으로 흡수했다(Lohr, Steve., “Lessons from a Hurricane : It Pays Not to Gouge.”, New York Times, September 22, 1992).

 

 홈데포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다. 홈데포는 2007년 당시 포춘 100대 기업 중 14위였고, 새로이 선임된 CEO 프랭크 블레이크는 직원의 참여와 충성도를 높이고, 제품의 혁신을 추진하며, 매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원가 절감을 위해 직원을 줄였던 것이다.


 MSN머니 웹싸이트에 홈데포의 단골고객 한명이 홈데포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다며 글을 썼다. 이에 따라 직원이 줄어 고객 서비스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는 글들이 폭발적으로 MSN머니 웹싸이트에 올라왔다. 이런 비판이 커지자 보도 자료를 배포하며 매체를 달래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 프랭크 블레이크는 직접 MSN 토론 게시판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 이렇게 공유된 전체 이야기들을 살펴보면서 드릴 수 있는 말은 정말 죄송하다는 말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글을 남긴 많은 분들이 모두 홈데포의 소중한 고객임을 명심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스캇(처음 비판을 제기한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뛰어난 통찰력을 기반으로 작성된 그의 글은 우리 회사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칼럼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블레이크가 사용한 글의 형태와 말투는 시의 적절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즐겨 사용하는 사무적이면서도 진부한 표현 대신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한 것이다. 홈데포는 자신들의 행동을 바로잡으려 노력했고 회사 직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고객에 대한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곧 무너질 것만 같았던 홈데포의 명성도 회복이 점차 이루어졌다. 고객들에 의한 서비스 평점은 상승했고, 주가는 경쟁 기업인 로우스를 압도했다.

 

 홈데포의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여겨진다. 나는 그 중에서 홈데포가 즉각적으로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둔다. 남양유업이 올바른 대처를 취하도록, 이번 사건이 다른 기업,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는 노력해야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적다. 처음에 봤듯이 소비를 줄이거나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 소비를 줄여야 하느냐에는 이견이 있을 것 같다. 그 기업이 바르게 변하기 전에 망해버리면, 그 기업에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남양유업 사건에 대한 정보는 다음을 참조


☞나무위키: 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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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경제학사를 수강하며 정리한 글입니다. 인용이 많기 때문에 학습에만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중상주의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기 어려우므로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중상주의


 

1. 서론 :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개괄


 고대와 중세의 경제사상이 압도적으로 당위적이고 규범적이라면, 근대의 경제학 이론은 경제현상에 대한 서술적 설명을 위주로 한다. 고대와 중세의 경제사상은 인간의 경제활동이 어떠해야 하는지 혹은 국가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주로 논의했다. 이에 비해 근대의 경제학은 국가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혹은 인간이 경제현실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논의했다. 이 같은 의미에서 경제사상이 경제학으로 바뀌는 과도기에 등장한 사조가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이다.[각주:1]


 그런데 경제적 사상의 이런 변화는 그 당시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상황과 무관하게 변한 지성의 역사가 아니다.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상황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물려받은 역사적 조건하에서 그러하다.”[각주:2]는 맑스의 유명한 구절을 생각해 볼 때, 고대와 중세의 당위적이고 규범적인 경제사상에서 점차 경제현실을 설명하려는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의 시도는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고대와 중세는 오늘날 경제학이 당연시 여기고 있는 화폐를 통한 상품경제가 발달하지 못하였다. 더불어 화폐는 단순히 재화의 교환수단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지, 오늘날 같이 자본의 역할을 하여 잉여가치, 이자를 얻는 수단으로 쓰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의 경제사상은 교환수단으로서의 화폐를 당위적이고 규범적으로 상정한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흔히 덕으로 번역되고 있는 aretē(아레테)가 대게 기능과 관련되어 있는 말인 것을 생각해 볼 때[각주:3], 화폐의 훌륭한 상태(aretē)는 교환수단의 기능·목적을 온전히 발하고 있을 때이고, 그것을 넘어 부를 창출하는 행위는 부덕한 것이다.


 당시의 경제사상에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의 교환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재화가 그 본래의 목적에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단 어떤 사람이 올바른 방식으로 사는 데 충분한 부를 취했다면 그는 더 이상의 부를 축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고대 세계에서는 자급자족과 고립적인 교환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점차 발달하는 상업에서 부를 축적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어 돈을 버는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시선은 탐탁지 않았다.[각주:4]


 고대와 중세에 화폐나 상업의 정의와 도덕이 경제적 문제에 관한 토론을 지배한 이유는 살펴보았듯이, 당시의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상황과 연관이 있다. 물론, 이는 당시 지배계급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각주:5] 그렇다면, 중상주의와 중농주의가 점차 경제현실을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어떤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가, 즉 그 둘이 등장하던 시기에는 어떤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상황과 어떤 지배계급의 이익이 어떻게 반영되었고 당시의 경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려 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는 봉건경제에서 점차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양식으로 확대되고 있던 시기에 등장했다.[각주:6] 생산관계가 점차 자본주의적으로 변하는 시기였으나 생산력의 발전을 억압하는 봉건적인 생산관계가 유럽에 남아 있었다. 당시는 주코프가 표현한대로 봉건제가 이때까지 경제적으로 살아남아서 생산력 발전에 장애가 되어 있었다.”[각주:7] 그리고 상품경제가 오늘날 자본주의와 같이 전반적으로 경제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았고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시기였다.


 이런 이유로 당시 자본주의는 수축, 불황, 또는 위기의 시기였다. 홉스봄은 이를 유럽 경제가 17세기에 전반적 위기를 겪었으며 그것은 봉건경제로부터 자본주의 경제로 넘어가는 전반적 이행의 마지막 국면이었다.”[각주:8]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런데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는 이런 위기에 대응해서 등장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중상주의는 상업을 통해, 중농주의는 농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들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반영하고 있었으므로 생산관계의 변화가 아닌 상업과 농업과 관련된 국가 정책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이에 따라 상업과 농업을 통해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시도가 나타난 것이다.


 “정치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17세기는 세계경제의 성장률 저하에 발맞추어 형태와 구조의 안정화를 꾀한 시대였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후의 질적 도약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17세기는 위기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속도 조정의 시대였던 셈이며 재앙의 시대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데에 본질적인 계기였음을 알 수 있다.”[각주:9] 시어도어 래브(Rabb, Theordore K.)는 그의 저서 The Struggle for Stability in Early Modern Europe을 통해서 1610년에서 1660년 사이에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 홉스 등에 의해서 구성된 지적 체계를 다름 아닌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안정화를 꾀하려 한 것이라 주장한다. 점차 근대적인 사고를 통해 경제현상을 바라보려 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는 이런 지적체계와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지배계급은 상품경제의 확대와 상업의 발달로 인해 상업, 유통에서 잉여가치를 획득하려는 움직임과 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이 확대됨에 따라 자연(토지)으로부터 인간의 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농업에서 잉여가치를 얻으려는 행동을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상업과 농업에서 잉여가치가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경제적인 설명이 바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가 시도했던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경제가 점차 확대됨에 따라 변하는 잉여가치의 획득 방법에 대응해서 그들은 경제적인 현상을 이해하려 했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점차 지배적으로 변하고 있던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이후 시기의 경제학과 태생적으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고대와 중세와 달리 교환가치를 통해 잉여를 획득하는 일이 점차 늘어나면서, 그 이전의 경멸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이에 대한 당위성을 옹호하는 사상적인 움직임과 철학적인 시도가 점차 사회에 지배적으로 나타난다.[각주:10]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더불어 부의 추구가 점점 당연시된다. “이자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빼앗는 것이 될 때에는 분명히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빌린 사람이 대부를 받아 돈을 번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러면 단순한 형평의 논리로서 빌린 사람이 돈을 벌 수 있게 빌려 준 자와 소득을 나누어야 하고, 돈을 떼일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한 것에 대해서도 보상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각주:11] 부를 추구하는 것은 점차 당연시되었으므로 경제에 관해 도덕적인 논의를 펼치는 것에서 경제현상을 설명하려는 움직임은 원동력을 얻게 된다.


 물론, 중상주의와 중농주의가 도덕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경제현상을 설명하려 했다고 과장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경제현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야와 그로부터 상업과 농업을 강조하는 주장 밑바닥에는 그들의 도덕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 예컨대 중상주의는 상업을 통해 정치적 질서가 안정될 것이라 보았다. 몽테스키외(Montesquieu)의 다음과 같은 말을 그들도 느끼고 있었을까. “정복의 정신과 상업의 정신은 국가 안에서 상호배타적이다.” “상업의 자연적인 효과는 평화로 이끄는 것이다.”[각주:12] 이런 도덕적인 기반은 이후 고전경제학으로 더욱 선명하게 확장되었다.


 우리는 개괄적으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앞서 강조한 관점을 통해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를 보다 상세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


 

2. 중상주의


 중상주의(mercantilism)란 용어는 중농주의자인 미라보 후작 빅토르 리케티(Victor Riqueti, 1715~1789)1763년 저서인 농업철학(Philosophie Rurale)에서 “system mercantile”이란 말로 처음 등장했다. 이 용어는 다른 중농주의자들 역시 사용했는데 당시 프랑스에서 이는 국내의 상인과 제조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경제정책 개입을 기술하기 위해 쓰였다. 이 체계는 흔히 콜베르주의(colbertism)로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장 밥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 1619~1683)는 루이 14세가 등극하고 있던 17세기 프랑스의 재무총감(오늘날의 재무장관)으로서 국가의 강력한 지도와 통제 아래 프랑스의 공업생산량을 늘리고 무역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외국으로부터 엄청난 금은을 끌어 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힘이란 곧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국왕과 콜베르의 신념이자 정책이었던 것이다.”[각주:13]


 그러나 중상주의란 용어를 대중화시킨 사람은 애덤 스미스이다. 그는 1776국부론(Wealth of nations)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일련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그러한 정책에 중상주의(‘mercantile system’ 또는 ‘system of commerc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는 부와 금은을 혼동하고 있는 대중적인 어리석은 행동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명망 있는 당시의 절대 권력자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통제적인 경제정책과 무역정책을 실시했다. 예를 들면, 영국 절대주의의 최대 전성기를 구가한 엘리자베스 1(16세기), 근세 영국 발전의 기초를 닦은 군사독재 정치가 크롬웰(공화국 호국경, 17세기), 프랑스의 태양왕이라 불리는 루이 14(17~18세기), 프로이센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18세기) 등은 모두 중상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엘리자베스 1세가 재위하고 있던 영국에서는 특히 금은을 중시하여, 외국과의 무역이나 식민지 지배를 통해 금은을 거둬들이고, 이것을 국내에 비축해 두기 위해 무역을 통제했다. 이런 식의 극단적인 정책은 별도로 중금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중상주의 초기 단계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관한 일화가 있는데, 한번은 은을 가득 실은 스페인 함선이 태풍을 피해 영국의 항구로 피난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엘리자베스 1세는 이것을 불법입국이라 하여, 배 안에 실려 있던 은을 모조리 압수했다. 당시만 해도 항해 중인 선박이 태풍을 피해 가까운 외국의 항구로 긴급 피난하는 것은 불법입국이 아니라는 관례가 국제적으로 이미 인정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스페인과 영국은 해상에서 교전을 벌이게 되는데, 여기서 영국 함대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시키고 만다.”[각주:14]


 종합해보면 중상주의는 국가의 부는 곧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에 따라 결정된다고 여기고, 외국과의 무역을 통제해서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금은(수입) 보다 들어오는(수출) 금은(net inflow of bullion)을 많게 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의 부를 추구하는 중상주의는 크게 두 가지 물음에 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왜 중상주의는 개인의 부가 아닌 국가의 부를 추구했냐는 것이다. , 국가 단위에서 경제현상을 분석하려는 이유에 답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를 둘러싼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둘째는 왜 부를 금은과 관련지어 생각했냐는 것이다. 이는 금은의 가치를 최고로 평가하는 중금주의와 부를 생산하는 측면이 아닌 유통의 측면에서 얻을 수 있다고 바라본 중상주의의 특징과 관련되어 있다.


 

2.1 절대왕정, 국민국가의 탄생과 지배계급의 이해관계


 중세 후기인 15세기까지의 유럽사회에서 농업생산성과 무역량은 비록 정체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성장속도는 새로운 영토정복에 의해 얻어지는 수확에 비교할 때 여전히 대단히 느렸다. 새로운 영토정복을 가져올 수 있는 전쟁은 당시 봉건제하에서의 지배계급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수단 중에서 아마도 가장 합리적이고 신속한 단일의 잉여수취의 확대양식이었다.”[각주:15]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이에 따라 전쟁의 비용을 충당할 금전과 군사력 확보는 잉여수취를 위한 기반이었다. (이렇게 당시에 지배계급이 잉여를 수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중상주의 역시 다른 국가에 적대적인 무역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중세국가에서 군사력의 동원은 봉신으로서 왕에게 군사복무 의무를 지니는 봉건귀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봉건귀족들의 군사복무는 기본적으로 토지보유 관계를 매개로 하는 의무 관념과 사회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런 봉건적 군사체제에 12세기 중반 이후 점차 금전적 지급을 통해 얻어지는 병력이 동원되었다. 이와 더불어 봉건귀족들의 중기마병보다 보병군이 전술에 중요해지고, 양궁부대, 화포, 돈을 받고 고용된 용병군이 전쟁에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이에 따라 군왕들은 화폐자원을 더욱 늘리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것은 통치가 관료제화되고 상비군을 보유하는 국민국가가 등장하면서 더 크게 부각되었다.


 많은 화폐자원을 필요로 했던 군왕에게 재원을 제공한 세력은 주로 상인이었다. 샤를르 7(Charles )는 당시의 프랑스의 유력한 상인, 자크 쾨르(Jacques Coeur)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상비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단순히 우연적인 개인적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군주의 독점적·물리적 강제력에 의해 보장되는 사회적 안정을 바랐던 당시의 중간계급의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다.[각주:16]


 절대왕정, 국민국가가 탄생하는 배경에는 이렇게 군주와 상인세력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었다. 중상주의가 국가의 상업적 이익에 관심을 둔 이유를 여기서 알 수 있다. 후세의 경제 이론가들이 대부분 학자나 철학자인 데 반해 중상주의자들은 스스로가 상인이거나 정부 관료였다. 이에 따라 중상주의는 절대국가의 이념에 맞게 국부를 추구한 것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로버트 에켈런드(Robert B. Ekelund)는 중상주의가 상인과 정부의 지대 추구(rent-seeking)[각주:17]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경제 이론을 개발한 것이라고 말한다. , 당시 상인의 막대한 이윤은 외국 경쟁자를 배제하고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노동 계급을 가난에 방치함으로써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수익은 높은 관세와 상인이 지불하는 막대한 자금에 의존하고 있었다.[각주:18]


 “중상주의는 그 당시의 이기적인 상인과 제조업자의 특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들에 의해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시기봉건적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환하여 가고, 그에 따라 세계시장에서 국민들 사이에 산업전(産業戰)이 전개되는 그 당시에는 자본의 급속한 발전을 이른바 자연발생적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제수단에 의해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였다에 속하는 것이다.


 국민적 자본이 점차로 완만하게 산업자본으로 전환되는가, 아니면 보호관세를 통해 주로 토지소유자·중소농민·수공업자에게 부과되는 조세에 의해, 독립적인 직접적 생산자에 대한 수탈의 촉진에 의해, 자본의 축적과 집중의 강제적인 촉진에 의해, 요컨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조건들을 가속도로 형성하는 것에 의해 위의 전환이 시간적으로 단축되는가는 매우 현저한 차이를 낳는다. 이것은 또한 국민의 자연적 생산력을 자본주의적으로 산업상에 이용하는 것에도 큰 차이를 낳는다. 그러므로 중상주의의 국민주의적 성격(national character)은 그 대변인이 입으로만 떠드는 단순한 슬로건만은 아니다. 중상주의자들은 국부와 국가재정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구실 하에서 실제로는 자본가계급의 이익과 치부 일반이 국가의 최종목적이라고 단언하고 낡은 교권국가(supernatural state)에 반대해 부르주아 사회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자본과 자본가계급의 이익의 증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이 근대사회에서는 국민의 위력과 우위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각주:19]

 


2.2 교환(유통)에서 잉여가치 설명: 물신숭배로서의 중금주의에서 좀 더 발달한 중상주의로


 “자본주의 사회의 이전 단계들에서는 상업이 산업을 지배하였다.”[각주:20]상업은 상품과 화폐의 단순한 유통에 필요한 조건들 이외에 다른 어떤 조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통하는 생산물이 어떤 생산양식(원시공동체, 노예제 생산, 소농민적 소부르주아적 생산,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생산 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 생산물의 상품으로서의 성격은 조금도 변경되지 않는다.”[각주:21]


 상품경제가 점차 확대되고, 상업이 발달됨에 따라 교환가치로서의 화폐가 갖는 영향력은 날로 커져갔다. 단순한 상품유통의 형태 C-M-C로부터 화폐가 가치척도와 유통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상품의 절대적 형태 따라서 부의 절대적 형태(퇴장화폐)로서 생기고, 그리하여 화폐의 유지와 증대가 목적 그 자체로 된다. “화폐는 어떤 상품으로도 직접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물질적 부의 일반적인 대표라는 점에서 질적으로나 형태상으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각주:22] 그렇기 때문에 양적으로 제한된 금은을 시시포스(Sisyphus)의 노동과 같이 끊임없이 축적하려는 열띤 모습이 중상주의에도 나타난다. 어쩌면 이런 중금주의는 당시 경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fetishism)[각주:23]일수도 있다. 헥셔(Hechscher)에 따르면 중상주의에서 화폐를 사랑하고 재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 당시 물물경제에서 화폐(금과 은)경제로의 이행을 표현하고 있다.[각주:24]


 “자본주의 시대의 인류는 이미 몇 세기 동안 잉여가치를 생산하여 왔으며, 또 점차로 잉여가치의 발생에 대한 사고를 전개시켜 왔다. 최초의 견해는 잉여가치가 상업활동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생기며, 잉여가치는 생산물가치에 대한 추가분이라는 것이다.”[각주:25] 이 사상이 바로 중상주의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에서는 상업자본이 M-CPC’-M’의 움직임을 보인다. “이른바 중금주의는 불합리하고 피상적인 형태 M-C-M’, 오로지 유통영역에서만 진행되는 운동의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1) M-C(2) C-M’이라는 두 행위를 설명할 때, 2의 행위에서 C는 자기의 가치보다 높게 팔림으로써 그것의 구매 때에 유통영역에 투하된 것보다 더 많은 화폐를 유통영역으로부터 끌어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좀 더 발달한 중상주의의 기초에는 M-CPC’-M’이 유일한 형태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 형태에서는 상품유통뿐만 아니라 상품생산도 필수적인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각주:26]


 중상주의자들은 화폐야말로 국부이며 이윤은 유통영역에서 창출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중상주의 정책은 가능한 많은 금과 은을 국가 내로 끌어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초기의 정책은 통화의 국외 유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목적은 외국시장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국내에 통화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이는 M-C-M’의 피상적인 유통영역의 운동의 표현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형태가 발전되고 외국무역이 확장되면서 통화유통을 막는 정책은 점점 부당한 것으로 되었다. 화폐흑자정책은 무역균형정책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것은 후기 중상주의자들에 의해 옹호되었다(토머스 먼 Thomas Mun, 세라 안토니오 Serra Antonio ). 그들은 국가가 수출입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즉 국가는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수입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따라서 수출상품의 제조가 장려되었다. 중상주의는 외국무역을 부의 원천으로 간주하였고, 수출상품이 장인에 의해 제조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수공업이 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중상주의의 주장은 좀 더 발달한 M-CPC’-M’의 형태에서 유통뿐만 아니라 상품생산도 고려하고 있다. “중금주의를 계승한 중상주의에서 결정적인 것은 더 이상 상품가치의 화폐로의 전환이 아니라 잉여가치의 생산인데, 그러나 유통영역이라는 불합리한 관점에서 그것을 고찰하며 동시에 이 잉여가치가 잉여화폐(surplus money)로서 무역수지의 흑자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각주:27]


 자본주의적 생산이 탄생하였고, 이렇게 중상주의자들의 전망은 그 시대의 경제발전 수준에 의해 조건 지워졌다. “근대적 생산양식에 관한 최초의 이론적 연구인 중상주의는 필연적으로 유통과정의 피상적인 현상들[이것들은 상업자본의 운동에서 자립성을 획득한다]로부터 출발하였으며, 이 때문에 외관을 파악했을 따름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상업자본이 자본 일반의 최초의 독립적인 존재형태이기 때문이었으며, 또 부분적으로는 상업자본이 봉건적 생산의 최초의 변혁기, 근대적 생산의 발생기에 미친 압도적인 영향 때문이었다. 근대경제에 관한 진정한 과학은 이론적 고찰이 유통과정으로부터 생산과정으로 옮겨갈 때 비로소 시작된다.”[각주:28]


 산업자본을 포섭하고 있던 상업자본은 점차 자본주의 생산이 확대되어 가면서 산업자본에 종속된다. 상인이 직접적으로 산업가가 되는 방식에서 생산자 자신이 상인으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경제현상이 상업(유통)에서 산업(생산)으로 옮겨가는 것에 따라,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경제학 역시 유통과정에서 생산과정으로 이론적 고찰이 움직인다. 그것은 우선 중농주의로 모습을 드러낸다.

 

2.3 중상주의 이후의 경제학과 비교

 

2.3.1 보호무역정책, 종속이론


 중상주의 국가는 무역흑자를 늘리기 위한 갖가지 조치를 취했다. 이런 조치에는 독점권 부여, 수량제한과 수입허가, 수출보조금, 이자율 정책, 유치산업 육성, 노동자 관리 등이 포함된다. 이런 이유로 중상주의에서는 생산에 의한 이윤획득 보다 상품의 양도에 의한 이윤획득으로 부의 증식이 이루어진다. 잉여가치가 교환에서 생긴다고 보았고, 가치 이상으로 상품을 판매할 때 생기는 것으로 가정한 것이다.


 후기 중상주의자인 스튜어트(Steuart, J., 1713~1780)는 세 가지 이윤을 개념을 제시하는데, 노동과 근로 및 숙련의 증대에서 발생하는 적극적 이윤(positive profit), 부의 비중상 변동을 의미하는 상대적 이윤(relative profit), 이들의 혼합적 이윤이 바로 그것이다. 스튜어트는 적극적 이윤을 노동생산력의 발전에서 생기는 사용가치량의 증대로 이해한다. 그는 상품가치가 현실적 가치와 양도이윤(profit upon alienation)으로 구성된다고 보는데 여기서 이 양도이윤은 상대적 이윤이다.[각주:29]


 중상주의는 무역이나 교환에서 가치가 증가하는 유일한 방법이 교환의 한쪽 당사자로부터 다른 당사자로 가치가 이전(transfer)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같은 가치이전이 지속적이며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면 양자는 모종의 수탈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가치이전이나 수탈관계에서는 당사자들 전체로 보면 아무런 가치증가가 없다.


 이 같은 생각에서 무역이 쌍방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을 이롭게 하고 타방은 빈곤하게 만든다는 인근궁핍화정책(beggar-my-neighbor policy)의 논리가 나온다. 이는 세계적 규모의 불균등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1969년 엠마뉴엘(Emmauel, A.)에 의해 제기된 부등가교환(unequal exchange)과 마찬가지로 무역은 중요한 약탈 수단이다. 부등가교환의 이론은 1970대에 상당한 영향을 준 이론인데, 선진국과 비교해서 저발전국에서 노동력의 가치를 결정하는 상품들의 가치가 엄청 낮기 때문에 저발전국들이 상대적으로 가치가 과소평가된 상품을 수출하고, 선진국들이 가치가 과대평가된 상품을 수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의 교환을 통하여 선진국은 그들이 생산에서 산출한 것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을 교환에서 전유한다. 즉 잉여는 충분한 투자가능 잉여의 부족으로 축적률이 저하하고 있는 후진국으로부터 이전되는 것이다.


 무역이 일방을 이롭게 한다는 논리는 부등가교환과 비슷하게 종속이론에서도 찾을 수 있다. 프레비쉬(Prebisch, R.)는 슘페터와 케인즈의 제자였던 싱거(Singer)와 함께 1950년대에 선진국과 무역으로 인해 개도국은 점점 손해를 보게 된다는 프레비쉬-싱거 가설을 주창했다. 개도국이 비교우위가 있는 농산물 등 1차산품의 교역조건이 선진국의 공업제품에 비해 장기적으로 악화되어 무역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선진국에게만 돌아가고 개도국의 후진성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공업제품을 더 소비하려고 할 것이므로 무역이 확대될수록 국제시장에서 1차산품의 상대가격은 공업제품에 비해 더욱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중심-주변으로 분할된 세계경제와 후진국의 종속을 설파했던 종속이론의 토대를 놓았다. 선진국으로 잉여가 흘러들어감에 따라 제3세계가 정체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프랑크(Frank, A. G.), 아민(Amin, S), 도스 산토스(Theotonio dos Santos)등의 다양한 종속이론들로 나타났다.[각주:30]


 중상주의는 무역에서 쌍방이 이익을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인 가치이전이나 수탈을 통해 부가 증식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수입을 최대한 줄이고 수출을 최대로 늘리기 위한 보호무역을 주창했다. 이 같이 중상주의는 경제운행에 대한 국가의 포괄적인 개입을 당연시했다. 후대에 중상주의와 보호무역이 거의 동일시되고 20세기에 들어 보호무역정책이 신중상주의로 규정된 것은 이 때문이다. 신중상주의는 구체적으로 반드시 일치한 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영국의 경제학자 로빈슨(Robinson, J. V.)은 저서 신중상주의(the new mercantilism)(1966)을 통해 세계 각국이 타국으로부터 국제수지의 흑자를 획득하려고 하는 점에 신중상주의의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호무역의 주장했다는 점에서, 경제학과 사회과학에서 역사적 관점을 강조했던 독일의 역사학파와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역사학파는 자유무역이 독일경제의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역사학파의 시조인 리스트(List, F., 1789~1846)는 자유무역이 당시 선진국이었던 영국에 적절한 논리일 뿐 후진국이었던 독일에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주창했다.


 중상주의와 달리 고전학파에서 무역은 모두를 이롭게 한다. 고전학파는 교환이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다는 점과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분업체계 아래에서 교환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어 국내의 교환과 국제무역의 자유로운 교류, 즉 자유무역과 경제적 자유를 주창했다.


 이어 신고전학파는 교환과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고전학파보다 한층 더 부각시키는데, 교환을 통해 당사자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는 논리에 의존한다. 신고전학파에서 교환은 파레토 개선을 가져온다.


 결론적으로 다 같이 교환과 무역을 중시하면서도, 중상주의는 교환의 이익이 가치의 일방적인 이전이나 수탈이라고 보아 보호무역을 내세운 데 비해, 나중에 등장한 고전학파 및 신고전학파는 교환당사자들에게 골고루 이익이 발생한다고 생각해 자유무역을 주장했다.[각주:31]

 

2.3.2 화폐에 대한 입장


 중상주의 사상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보호무역에 대한 옹호였다. 중상주의는 보호무역을 통해 특정 국가에게 지속적인 흑자 혹은 적자가 가능하다고 주창했다. 이에 대해 고전학파는 지속적인 흑자와 적자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 반박은 스미스와 거의 동시대의 철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흄(Hume, D., 1711~1776)의 정화-흐름(specie-flow)에 함축되어 있다. 흄은 무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흑자와 적자가 반전되어 균형상태로 되돌아 간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논리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교역중인 두 국가 AB A가 흑자를 누리는 데 반해, B는 적자를 겪고 있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BA에 금이 유입되고, 금이 유입되면 금본위제 하에서 자동적으로 화폐의 공급이 증가한다. 화폐수량설을 전제할 때 화폐공급의 증가는 A에 물가상승을 초래한다. B에서는 반대방향으로 이와 유사한 일련의 변동이 발생한다. , 금이 유출되고, 금본위제 하에서 화폐의 공급량이 감소하며, 화폐수량설에 따라 물가가 하락한다.


 편의상 교역재와 비교역재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A의 물가가 상승하고 B의 물가가 하락하면서 교역조건이 A에 불리하게, 그리고 B에 유리하게 바뀌게 된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경우 A국 제품에 대한 국내외 수요가 줄고, B국 제품에 대한 국내외 수요가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서, A의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며, B의 수출이 증가하고 수입이 감소한다. 결국 국제수지가 원래 상태로부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A가 계속 흑자를 누리고 B가 적자의 수렁에 빠져 있는 상황이 지속될 수 없다.


 이 이론은 금본위제, 화폐수량설, 수요의 가격탄력성 등 세 가지를 핵심 요소로 삼고 있다. 중상주의에 대한 흄의 비판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금본위제도는 금의 유출입이 비례적으로 화폐의 공급량을 변동시킨다는 논리적 고리에 담겨 있다. 또한 화폐수량설은 화폐공급량의 변동이 같은 방향으로 물가변동을 가져온다는 고리에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수요의 탄력성은 가격이 변동하면 수요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고리에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화폐수량설이 중상주의에 배치된다. 일반적으로 화폐는 재화나 상품과 달리 교환과정이나 유통과정에만 머물지도 않고, 그렇다고 유통과정 밖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그런데 중상주의는 화폐축적 자체가 경제활동의 목표라고 보아 화폐가 유통과정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과 이에 상응하는 화폐의 퇴장(hoard)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다.


 화폐에 대한 중상주의의 관점에 의하면 화폐는 퇴장될 수 있으므로 화폐공급량 변동이 반드시 같은 비율의 화폐유통량 변동을 의미하지 않으며, 비슷한 비율로 물가를 변화시킨다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 나아가 화폐경제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는 당시로서는 화폐공급량 변동이 물가변동을 가져오기보다 더 많은 거래를 촉진시킨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도 흔히 후진국에 대해 화폐적 매개 혹은 금융적 매개의 미성숙이 지적되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논의를 피셔(Fisher, I., 1867~1947)의 교환방성식을 이용해 종합해 보자.


 MV = PT (M: 통화량, V: 유통속도, P: 물가, T: 거래량)


 화폐수량설은 VT가 고정되어 있어 M의 변동이 P의 변동으로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중상주의에서 퇴장기능은 M의 변동이 반대방향으로 V의 변동을 가져와 스스로 상쇄되므로, PT에 영향이 없거나 상당히 적다는 논리를 제공한다. 여기서 수요의 비탄력성은 M의 변동이 완전히 P의 변동으로 완전히 P의 변동으로 전환되지 않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T의 변동을 낳는다는 주장을 가능케 한다.


 이 같이 화폐수량설이나 가격탄력성 등에 있어 흄의 정화-흐름 기제가 중상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어떤 전제하에서 중상주의에서 보호무역을 주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각주:32] 더욱이 상품경제가 확장되고 있었던 중상주의의 시기에서는 필요한 화폐에 비해 금과 은이 부족했을 것이고, 오늘날의 경제학에서 화폐수량설이 갖은 여러 이론적 설명은 당시 경제 현실과 맞지 않았을 것이다.

  1. 홍훈, 『경제학의 역사』, 박영사, 2007, pp.37-38 [본문으로]
  2. Marx, K., “The Eighteenth Brumaire of Louis Bonaparte”(「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맑스·프레드리히 엥겡스 저작선집 2』, 박종철 출판사, 1992, p.287 [본문으로]
  3. 모든 사물에는 그 종류나름으로 ‘훌륭한 상태’, 즉 ‘좋은(agathos=good) 상태’가 있게 마련이다. 이는 대게 그 종류나름의 ‘기능’(ergon) 또는 ‘구실’과 관련되어 있는 말이다. 그것이 어떤 것의 생존 기능 또는 그것의 존립 이유나 존립 조건과 관련된 것이든 간에 상관 없이, 그것들의 ‘훌륭한 상태’는 있게 마련이다. 가령 우리가 ‘좋은 눈’이라 말할 때, 이는 눈의 기능과 관련해서 하는 말이요, 개나 말의 경우에서처럼 그것들의 생존 조건이나 인간에 대한 그것들의 유용성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그 ‘훌륭한 상태’를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인위적인 산물은 그것들의 유용성 및 기능과 관련된 ‘훌륭한 상태’를 전제로 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좋은 칼’이라든가 ‘좋은 낫’이라 말함은 그 때문이다. 이런 ‘훌륭한 상태’ (훌륭함: goodness, excellence)는 ‘아레테’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탁월한 하프 연주자는 하프 연주를 탁월하게 할 것이고 탁월한, 덕스러운 인간은 삶을 훌륭하게 살 것이다.(EN 1권 1098a 7-15) [본문으로]
  4. 아리스토텔레스 경제사상에 대해 매우 정리가 잘 된 글이 있어 인용한다. “물건의 자연스런 쓰임새가 자급자족 및 생계유지, 그리고 행복한 삶이나 도덕과 정의의 실천에 있다고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물건을 사용가치로 취급하는 생각에 부합된다. 또한 사용가치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제가 보편성을 갖는 경제이다. 이에 비해 교환가치는 물건의 본성과 무관하고 부자연스러우며, 이것을 추구하는 상업사회나 시장경제 역시 자연에 반한다.” (홍훈, 『경제학의 역사』, 박영사, 2007, p.32) [본문으로]
  5. “어떤 시대에서나 지배 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지배적인 물질적 세력인 지배 계급이 동시에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세력이라는 말이다. 물질적인 생산의 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은 그 결과 정신적인 생산의 수단도 통제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신적인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계급의 사상은 대체로 그것에 종속된다.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들의 관념적 표현, 사상으로서 파악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 계급을 지배 계급으로 만드는 관계들의 표현, 즉 이 계급의 지배 사상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Marx, K. / Engels, F., 『독일 이데올로기 I』, 김대웅 역, 두레, 1989. pp.91-92) [본문으로]
  6. 이 시기를 자본주의로의 이행기로 봐야하는지 아직 본질적으로 봉건적인 자본주의 초기로 인식해야 하는지는 우리의 관심분야가 아니다. 이 시기 구분 문제에 관해서는 맑스주의 내부의 논쟁이 전개된 적이 있다. 모리스 돕(Maurice Dobb)은 “튜더 및 스튜어트 시대의 영국을 훗날의 ‘산업 자본주의’에 대비시켜, ‘상인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생산력은 중세나 다름없는 형태였더라도 생산관계는 [이미 변화하고 있던 게 아닐까]”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다. [본문으로]
  7. Immanuel Wallerstein, 유재건 역, 『근대세계체제Ⅱ』, 까치, 1999, p.19 [본문으로]
  8. Hobsbawm, E. J., “The Crisis of the Seventeenth Century”, in Trevor Aston, ed., 『Crisis in Europe, 1560-1660』.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65, p.5 원래 「과거와 현재(Past and Present)」(1954)지에 실린 논문이다. [본문으로]
  9. Immanuel Wallerstein, op. cit, pp.57-58 [본문으로]
  10. 이에 대해서는 허쉬만(Hirschman)의 『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열정과 이해관계)』를 참조할 것 [본문으로]
  11. Galbraith, J. K., 장태구 역, 『경제학의 역사』, 세종연구원, 1996, pp.53-54 [본문으로]
  12. Albert O. Hirschman, 『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 –Political Arguments for Capitalism before Its Triumph』,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8, p.80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3. 우에노 이타루, 신현호 역, 『세계사를 지배한 경제학자 이야기』,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03, p.106 [본문으로]
  14. lbid., p.107 [본문으로]
  15. Anderson, Perry, 『Lineages of the Absolutist State』, Lodon: New left Books, 1974, p.31 중상주의가 발전하던 당시는 봉건적인 경제 질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던 시기였던 만큼 이 말은 여전히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16. Vagts, Alfred, 『A History of Militarim』, New York : Meridian Books, 1959, p.70 [본문으로]
  17. 여기서 지대는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 기득권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 경제학에서 지대추구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간단히 살펴보겠다. 지대(rent)란 공급이 제한된 독점적인 생산요소나 지위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요소의 공급자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말하며, 흔히 판매가격이 기회비용보다 얼마나 높은가에 의해 측정된다. 지대추구행위란 지대를 얻고자 하는 자가 공급을 제한하거나 비탄력적으로 만들려는 하는 행위들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국제무역에서는 정부가 국제무역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며, 국내기업들이 자신의 지위를 보호받고 이권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원이 낭비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크루에거(Ann Krueger)와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수입보호가 지대추구행위를 심화시켜 경제의 비효율성을 심화시킨다고 역설한 바 있다. 지대와 이권을 추구하기 위해 보호받는 산업가와 정치인, 정부관료 사이에서 뇌물 등이 오가는 비생산적 노력들이 나타나고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18. Niehans, Jürg (1990), A History of Economic Theory: Classic Contributions, 1720–1980, Baltimore, MD: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본문으로]
  19. Marx, K., 『자본론』,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6, 3권 하, p.954 [본문으로]
  20. 『자본론』, 3권 상 p.399 [본문으로]
  21. 『자본론』, 3권 상 p.394 [본문으로]
  22. 『자본론』, 1권 상 p.170 [본문으로]
  23. 물신숭배는 원래 바위나 큰 나무, 조상이 남긴 물건에 영혼이 깃들어 있고, 그것이 초자연적인 마법의 힘으로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는 신앙이다. 영어로는 페티시즘(fetishism)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15∼16세기에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돌이나 나무 같은 특정 대상물에 기도하는 것을 보고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인 라틴어 팍티키우스(facticius)는 '마법의 힘을 갖는다'는 뜻이다. 물신숭배는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동물 뿔 속에 마법을 부리는 물건[물신, 物神]을 담아두고, 물신이 사냥을 잘되게 하고 병마를 막아낸다고 여겼다. 이러한 주술적 물건에는 조상의 머리카락이나 뼈도 있는데, 이들은 물신을 개인 사당에 모시고,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물신은 세습으로 전해지며, 이것을 가진 사람들의 특권을 나타내고 권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본문으로]
  24. Magnusson, Lars G. 「Mercantilism」, 『A Companion to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ed, Blackwell, 2003, p.48 [본문으로]
  25. 『자본론』, 2권 p.11 이 부분은 서문으로 엥겔스가 쓴 것이다. [본문으로]
  26. 『자본론』, 2권 p.70 [본문으로]
  27. 『자본론』, 3권 하, p.953 [본문으로]
  28. 『자본론』, 3권 상, pp.407-408 [본문으로]
  29. Marx, K., 『잉여가치학설사』 [본문으로]
  30. 이강국, 『다보스, 포르투 알레그레 그리고 서울 –세계화의 두 경제학』, 후마니타스, 2005, p.122 [본문으로]
  31. 홍훈, 『경제학의 역사』, 박영사, 2007, pp.41-43 [본문으로]
  32. lbid, pp.44-49 [본문으로]
Posted by Econom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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