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근대 질서의 충돌

(김용구, 세계외교사)


 

1 나폴레옹전쟁


 

1. 혁명 프랑스와 유럽

-1792년 전쟁

1789년 프랑스 혁명 -> 혁명 프랑스가 외교의 새로운 형식을 표방, 국제정치의 기존 규범을 변혁시키려고 하자 유럽 열강들과 충돌. 처음에 몇몇 분쟁들이 있었지만 각국의 사정으로 인하여 바로 무력충돌로 이어지지 못함. 루이 16세와 그 가족들이 해외로 도피하려다 발각돼 압송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를 계기로 프랑스 혁명에 유럽 전체가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필니츠선언이 발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179227일 프랑스에 대한 동맹을 체결하고 420일에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

 

-1792년 전쟁의 원인에 대한 견해들

공화정과 군주제의 상반된 이데올로기의 전쟁으로 보는 견해 혁명 프랑스도 전통을 그대로 계승해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전통적인 혐오 정책의 결과로 보는 견해 국가이성이 국제 관계의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견해 특정한 국가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발발했다는 견해 지롱드 당에 전쟁의 책임을 돌리는 견해 열강들의 오산이 전쟁을 유발시켰다는 견해

 

2. 나폴레옹 전쟁(1)

-전쟁 명분의 논쟁-겐츠와 오트리브

오트리브 : 진정한 세력균형은 영토와 군사력의 균형이 아니라 해양통상의 균형. 하지만 영국이 해양을 독점해 유럽 국가체제를 파괴하는 근본적인 원인. 영국은 대륙균형과 해양균형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프랑스를 소멸시키려함. 따라서 대륙 국가들은 프랑스와 단결해 해양법을 개정 필요.

겐츠 : 세력균형을 영토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에서 분석했으며 그 파괴자는 혁명 프랑스라고 규정. 프랑스 혁명이 유럽의 국가 체제를 파괴한다는 버크의 견해에 동조. 동맹은 유럽 체제 안에서 개별 국가들의 이해에 따라 단결하는 것이고 연합은 유럽 전체의 이해에 의해 단결되는 것이라고 구별.

 

-1차 연합(1793~1797)

1792420일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한 후에 벌어진 발미 회전은 혁명 프랑스의 최초의 승리이자 구체제 프랑스의 최후 승리. 프랑스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포. 영국은 대륙에서는 세력균형이 유지되도록 하고 자국은 자유로이 해외진출을 도모한다는 전통적인 정책이 위협을 받게 되자 영국을 중심으로 약 10여 개국의 연합을 결성.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바덴, 뷔르템베르크, 바바리아, 포르투갈, 피에드몬트, 교황령, 나폴리 왕국, 러시아) 하지만 예상과 달리 프랑스가 대외 팽창의 길을 걷게 되자 연합은 와해.

 

 

-캄포 포르미오 조약(1797 1018)

프로이센은 폴란드 방면으로 진출한 러시아에 불안을 느껴 179545일 바젤조약을 통해 프랑스와 화해의 길.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도 연합에 남아있기보다는 제 3차 폴란드 분할처럼 다른 곳에서 보상을 얻고자 함. 프랑스는 전쟁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고 영국을 직접 공격할 수 없자 오스트리아의 영향권에 있던 이탈리아로 침공해 결국 오스트리아와 캄포 포르미오 조약을 체결해 전쟁상태를 종식. 이로써 제1차 연합은 완전히 해체.

 

-2차 연합(1798~1801)

17985월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 오트만 제국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러시아와 정면으로 충돌. 이에 영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오토만 제국이 참여한 연합을 구성. 영국의 피트 수상은 러시아 정부에 유럽 개편안을 제안하였고 이는 전쟁의 목적을 처음으로 명백히 밝힌 점에서 중요하며 훗날 빈 회의 결정의 큰 골격이 됨.

 

-루네빌 조약(180129)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의 군사 활동에 반발하고 군사적인 부담을 러시아만 떠맡고 있다고 판단하여 연합에서 이탈. 오스트리아 또한 호헨린덴 전투에서 패하고 프랑스와 180129일 루네빌 조약을 체결하여 연합에서 이탈. 조약 체결로 인해 사실상 신성로마제국은 붕괴.

 

-아미앵 조약(1802327)

프랑스와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는 영국뿐. 나폴레옹이 포르투갈로 공격방향을 바꾸자 결국 영국도 화해를 모색. 1802327일 아미앵 조약 체결을 통해서 영국은 거의 모든 식민지를 프랑스에 양여. 양국의 유일한 화평조약이었으며 이를 통해 오랜만에 유럽은 평화 상태가 됨. 하지만 영국의 지나친 양보로 인하여 비판이 일어났으며 아미앵 조약은 일종의 휴전 조약에 불과했기에 무역에서 프랑스와 충돌하게 되었고 다시 전쟁 선포.

 

-3차 연합 전선(1805~1807)-영국과 러시아

180412월 나폴레옹은 황제가 됩니다. 이에 영국은 프랑스에 대한 연합을 다시 형성하게 되고 러시아 또한 영국과 동맹을 원함. 러시아와 이미 비밀 합의가 있던 오스트리아도 참여하게 됩니다. 연합군은 해전에서 영국 해군의 활약으로 승전했으나 대륙에서의 패배로 러시아군은 후퇴하였고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에 휴전. 한편, 바젤 조약이후 중립을 지켜오던 프로이센이 하노버 문제로 18069월 프랑스에 전쟁을 선언하지만 예나와 아우에르슈타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승리하여 베를린에 입성. 그리고 여기서 영국 봉쇄를 선언하는 대륙 체제를 알리는 베를린 포고를 발표. 이로써 제3차 연합도 와해.

 

3. 나폴레옹 전쟁(2)

-나폴레옹 제국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을 실질적으로 지배. 프로이센을 패배시킨 후에 계속 동진해 러시아와 대치. 여기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을 만나 180777일 해당국들에게 실로 굴욕적인 틸지트 조약 체결. 프랑스에 대해 많은 부분 양보. 프랑스는 대륙 체제에 포르투갈을 편입시키기 위해 침공을 단행하는데 영국이 프랑스에 대적해 반도 전쟁을 승리하며 프랑스의 무적 신화를 깨트립니다.

-1812년 프랑스-러시아 전쟁

18104월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이 결혼함으로써 러시아와 프랑스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 더욱 관계가 악화되어 양국의 동맹 관계가 깨지게 됨. 프랑스에게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프랑스에게 최소한의 협력제공을 러시아에 비밀리에 약속. 프랑스는 18126월 러시아를 침공해 모스크바까지 점령했으나 이미 쓸모없는 도시가 되어있음. 추위와 코작 기병들의 공격으로 대패하여 파리에 돌아왔을 때, 60만을 헤아리던 나폴레옹 군의 숫자가 불과 8천 명 정도로 줄었음.

 

-4차 연합(18136~)

나폴레옹이 패배 후에 파리로 돌아오자 프로이센은 프랑스와 동맹관계 청산하고 러시아와 1813228칼리쉬 조약을 체결. 이 조약은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4개 국가의 합의로 발전. 오스트리아는 명분상 아직 프랑스의 동맹국이었지만 연합국과 프랑스의 조정자 역할을 하게 되고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에게 평화 조건을 제시하고 연합국과 프랑스는 일단 휴전 상태에 들어감. 하지만 나폴레옹이 이 조건을 수락하지 않을 때는 전쟁을 선포하기로 연합국과 오스트리아는 합의.

 

-드레스덴 회의(1813626~30)

나폴레옹과 메테르니히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휴전기간 연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남. 평화 조건에 대한 나폴레옹의 회답이 없자 오스트리아는 결국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 또한 전쟁 중에 외국인 부대들의 이탈이 시작 되었고 이는 나폴레옹군의 대패로 이어짐.

 

-쇼몽 조약(181431)

25일 샤티옹에서 열린 마지막 회의에서 나폴레옹에게 전쟁으로 얻은 모든 영토를 포기하라고 제의했지만 나폴레옹은 거절. 결국 연합국 대표들은 181439일 쇼몽 조약을 체결. 이는 4국 동맹의 모체가 되었으며 세력 균형론 자들이 주장하던 원칙들을 하나의 조약으로 합의한 최초의 문건. , 프랑스가 다시 침략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장치 구상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동맹 조약과는 다른 성격을 지님.

 

-폰텐느블로 협정(1814411)

연합군 파리에 입성하게 되었고 연합국들은 나폴레옹의 무조건 퇴위를 주장. 결국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격리. 알렉산드르 1세의 낭만주의적 주장으로 협정의 내용이 관대.

 

-1차 파리 평화조약(1814530)

파리에 입성한 연합국들은 프랑스와 평화조약 체결, 이를 제1차 파리 평화조약이라고 함.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스웨덴,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8개국이 형식상의 서명 국가였으며 조약은 정당한 세력의 분배로써 영구 평화이룩을 말함. 그리고 프랑스는 1792년의 국경선으로 돌아간다는 내용도 포함.


 

 

2절 빈 회의 



1.빈 회의의 구성과 기본원칙

18149월 빈에서는 세계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회의가 열렸는데 이는 20여 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을 마무리 짓는 평화회의. 유럽 국제사회에서 중세적인 요소들을 상당히 제거시킨 빈 회의는 유럽 국제정치 구조를 변화시킴.

 

-회의 참석자 범위 문제

빈 회의는 최종의정서를 채택할 때까지 한 번도 전체회의를 열어보지 못한 특이한 회의. 1차 파리 평화조약에서 정한 규정의 모호함에서 기인된 것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표들이 많이 참석하였기 때문.

-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프랑스

 

-정치 위원회

1차 파리 평화조약 비밀조항에서 합의된 사항으로 비밀조항 제1조를 보면 프랑스가 포기한 영토의 처리와 유럽의 세력균형 체제 유지에 관한 모든 문제는 연합국인 4대 강국들이 합의한 원칙들에 입각해 장차 열릴 회의에서 결정. 국제정치의 강대국 중심의 성격이 국제법 규칙으로 명문화 됐으며 훗날 국제 연맹의 이사회나 국제연합의 안보리 구성 원칙을 예고. 하지만 프랑스 탈레이랑이 반론을 제기하고 전체회의에서 유럽의 문제들이 결정되어야한다는 의견이 4국 이외의 국가에서 지지를 받게 됨에 따라 파리 평화조약 8개국이 회의를 주도해야 한다는 명분을 세움. 그 후 빈 회의의 최대 현안인 색스니 문제로 4개국 간에 대립관계가 형성되었고 결국 프랑스를 포함한 5국 위원회를 결성하게 되고 최종의정서를 작성한 기초위원회도 5국 위원회가 구성.

 

-전문 위원회

10개의 전문위원회로 구성되었으며 전문위원회가 연구 검토한 자료들은 4국 위원회, 5국 위원회의 결정에 참고

 

-기본원칙

기본 원칙의 전제는 유럽의 국제정치 질서는 전쟁 이전의 현상유지( 1792년 이전의 정치질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세력균형 원칙과 정통주의라는 빈회의의 2대 기본원칙이 나옴. 현실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았을 때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프랑스가 다시 강대국이 되어 유럽의 국제정치 질서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어떻게 강구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에 의해 개편된 유럽의 국경선을 어떻게 다시 획정하느냐. 하지만 이런 정통주의 원칙이 독일 지역에서는 거의 적용되지 않음.

 

2. 빈 회의의 결정들

-폴란드와 색스니

빈 회의 최대의 현안은 폴란드와 색스니 문제였는데 색스니는 나폴레옹과 오랜 기간 연합했기에 보상을 위한 대상 지역으로 여겨져 왔음. 폴란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동유럽 3국의 관심사였습니다. 일련의 조약에서 자창 폴란드는 이들 세 국가에 분할되며 구체적인 것은 우호적인 합의에 따른다고 막연히 규정하여 열강들의 대립을 야기. 각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대립이 진행되던 중 181513일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는 3국 동맹을 결성하게 되었고 이렇게 되자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후퇴. 결국은 러시아가 폴란드의 대부분 지역을 점유하고 크라코우와 그 인근 지역을 동유럽 3국이 감독하는 자유시로 만드는 것에 동의. 프로이센은 색스니의 2분의 1 지역점유에 만족.

-독일연방의 구성

이전 신성로마제국이었던 이 광활한 지역을 어떻게 조직하느냐하는 문제는 어려운 현안. 이 문제는 독일 내부의 문제이면서 유럽 전체의 문제. 내부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겹치면서 이들 모두를 조화시키는 것이 어려움. 4대 강국이 빈에서 반복된 논쟁을 펼치면서 끝나지 않던 문제가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면서 급전직하로 해결. 181568일 합의된 독일 연방의 형태는 34개의 군주와 4개의 자유시로 구성된 느슨한 방어 동맹과 유사.

 

-네덜란드 왕국의 성립과 북부 유럽

프랑스 북부 지역에 강화된 네덜란드 국가를 건설해 프랑스의 팽창을 저지한다는 것은 영국의 기본 정책이었기에 현재 네덜란드지역과 벨기에 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을 통합. 소위 세력균형이라는 정치적 편의에 따른 통합결정은 오래가지 못하게 되고 벨기에는 독립운동 후 영세 중립이 결정.

 

-스위스와 이탈리아

열강들은 스위스의 영세 중립은 유럽 전체의 이익, 프랑스 봉쇄 수단에, 그리고 스위스의 전통적인 정책에도 합치 된다고 판단. 이에 파리 평화조약 서명 8개국은 스위스를 영세 중립국가로 승인하였고 나머지 국가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조약 제435조에 가입함으로 인정. 9개의 정치 단위로 구성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순전히 지리적으로만 존재했고 정치적인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음.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대해 통일 이탈리아라는 사상이 싹트고 나폴리 지역을 중심으로 통일 운동이 전개.

 

-외교관의 등급, 노예무역 그리고 그 밖의 문제들

외교관의 등급과 석차는 중세 이래 분쟁의 불씨가 되어왔는데 빈 회의에서 완전한 해결(대사, 전권공사, 대리공사)을 보았으며 엑스--샤펠 회의에서 변리공사를 두어 보완. 변리공사는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정에서 이 등급을 삭제하게 됩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노예무역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영국이 앞장서서 반대를 주장했지만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반대로 인도와 보편적인 도덕성에 위배 된다는 원칙적인 선언에 만족.

 

-최종의정서(181569)

빈 회의 최종의정서는 121개 조항과 17개의 부속문서를 포함한 방대한 조약. 빈 회의가 소집된 이래 모든 국가들이 한자리에 처음 모인 날은 그 날이 처음. 회의가 예상보다 오래 걸렸으며 나폴레옹의 엘바섬 탈출로 완전한 전후 처리는 제 2차 파리 평화조약으로 연기.

 

3. 2차 파리 평화조약

-열강의 대응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였으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전투태세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던 터라 전투의 재개가 신속히 결정되었으며 25일에는 쇼몽 조약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천명. 나폴레옹의 재등장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화해는 와해되고 러시아가 다시 유럽의 구세주로 행세. 하지만 1815715일 나폴레옹은 결국 투항하여 세인트헬레나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

 

-2차 파리 평화조약(18151120)

프랑스가 다시는 유럽의 평화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예방 장치를 마련하자는 극단론이 대두. 4국 위원회의 토의는 프로이센 강경파와 영국-러시아의 온건 노선의 논쟁이었는데 이후 의견의 일치를 보고 제1차 파리 평화조약이 성립. 외교사에서 1790년과 1792년의 국경선이라는 용어가 이때부터 사용. 1818년 엑스--샤펠 회의에서 모든 보장 점령군 철수가 결정. , 패전국에게 배상금을 부과하고 그 약속 이행과 패전국의 치안을 위해 일정 지역을 전승국들이 보장 점령한 것은 이 조약이 처음이라는 점.

 

-4국 동맹(18151120)

2차 파리 평화조약과 함께 같은 날에 4국은 동맹과 우호조약 체결. 프랑스가 침략을 기도하거나 나폴레옹 가문이 등장하는 경우 4국의 원조 의무 발생을 언급한 것이나 정기회의 개최는 국제 사회의 조직화를 도모한 최초의 예.

 

4. 빈 회의 결정의 의의

-민족주의 문제

군주의 이익을 위해 주민의 요구가 무시되었고 약소국들의 권익이 강대국의 정치적 편의에 따라 무시됐다는 견해와 반대로 그 어떠한 전후 처리보다 우수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나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 전역에는 법 앞에는 평등, 봉건적 잔존의 철폐의 신념이 전파되어 빈 회의는 혁명을 잉태.

 

-영국과 러시아(빈 회의 이후 각국 상황)

영국은 유럽 대륙에서는 열강의 상호 균형을 유지시키면서 자국은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 기본 구상이었고 빈 회의의 결정은 이를 잘 반영. 러시아 또한 폴란드의 거의 전역을 장악해 중부 유럽을 석권할 형태를 이루었으며 이런 위협은 제1차 세계대전까지 지속.

-프랑스 : 1790년의 국경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수치스런 빈 조약의 수정을 요구하는 현상 타파의 국가로 등장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빈 회의의 결정은 남부 독일에 대한 프로이센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기에 프로이센도 현상 타파 국가가 되었고 오스트리아는 명분상 최강대국의 하나였지만 너무나 광활한 지역을 가져 취약했으며 너무나 다양한 인종으로 허약.

-결정들의 효력

예를 들어 프랑스의 북부 국경과 스위스의 영세 중립, 외교 석차에 관한 규정은 오늘날까지 효력.

 

-현실과 이상

빈 회의는 열강의 정치적 이익을 조정하는 현실 정치의 측면과 전쟁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미래지향적인 측면을 가짐. 열강의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국제 분쟁의 해결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국제 사회의 조직화에 대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음.


 

 

3절 신성동맹


 

1. 신성동맹의 형성

 

러시아와 새로운 국제정치질서의 모색

빈회의 당시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신성동맹에 합의(18159)

신성동맹의 기본구상은 유럽공법을 기독교 원칙에 따라 재건, 모든 종파의 통합으로 국제평화 이룩함 (러시아의 사상과 입장대변 유럽사회의 문제화)

러시아는 당시 유럽의 평화를 찾아준 구세주로 간주(절대적 발언권) 전쟁 후 정치 질서 방향 제시로 유럽인들은 치욕이라 생각

신성동맹의 형성과정이 알렉산드르 1세의 개인성품과 관련, 처리과정이 매우 슬라브적

 

알렉산드르와 기독교

18077월 틸지트 조약으로 러시아 프랑스의 대륙봉쇄체제에 편입

18126월 프랑스의 러시아 진격, 모스크바 함락

일련의 사건을 거치게 되면서 기독교에 심취하게 됨

러시아 성서회의 조직, 알렉산드르, 슈틸링, 스투르자 3인기도회 조직

당시 유럽전역에 기독교 부흥에 관한 과격한 이론의 횡행 - 생 마르텡, 하르덴베르크 백작, 바아더, 크뤼테너 부인

 

바아더

1815년 팸플릿 발표, 문서의 초고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국왕에게 보냄

영혼의 동맹이 없이는 국가 사이의 동맹이 있을 수 없고 아직 진정한 기독교 국가는 이 세상에 존재해 본적은 없지만 이제야 비로소 종교, 사랑, 자유의 원칙들이 정치의 영역에 적용된 시기가 됐다.”알렉산드르에게 영향

알렉산드르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으로 옮김

 

크뤼데너 부인

신성동맹에 중요한 역할을 함

골리친과 스투르자를 통해 알렉산드르와 만남(181564) 알렉산드르 감동

이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종교에 대하여 토론 이 기간에 신성동맹의 초안이 작성

이 둘의 대화는 교회의 재건, 기독교정신에서의 인류구원, 프랑스의 구원에 초점

알렉산드르는 1815911일 러시아 군대의 사열이후 인류구원이 사명이라 여김

알렉산드르의 정치적, 종교적인 고민, 프랑스 구원 생각 끝에 나온 것이 신성동맹

 

2.신성동맹의 내용

 

초안

알렉산드르 황제의 초안은 918크뤼데너 부인이 결정적 역할을 함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1815919일 초안 전달하였으나 프로이센 국왕과 오스트리아 프란시스 황제 탐탁치 않아함

메테르니히 - “종교의 외투 밑에 있는 박애의 열망

메테르니히와 프란시스, 알렉산드르의 수정안으로 25일 동의 26일 서명

 

내용

신성동맹 조약은 전문과 3개의 조항으로 구성

전문

유럽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지배되어야 한다고 강조

지난 3년을 특징지었던 대사건들의 결과로, 특히 신의 섭리에만 신념과 희망을 둔 국가들에게 내려진 축복의 결과로, 열강들이 그 상호관계에 있어서(a과거에 채택된 방향은 절대적으로 변경되어야하며) 채택되어야 할 방향은(b과거에 채택된) 우리들 구세주의 성스러운 종교가 가르치는 숭고한 진리에 입각할 필요가 있다고(c) 깊은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 문서는 온 세상 앞에 자국의 운영에 있어서나 다른 정부의 정치관계에 있어서나 신성한 종교의 가르침, 정의의 가르침, 사랑과 평화의 가르침 - 이들 가르침은 인간의 제도를 공고히 하고 그 불완전한 것을 교정하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오로지 사생활에만 적용되는 것이(d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한 것 같이) 결코 아니라 반대로 군주들의 결의와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 (e 장차) 그들의 유일한 지침으로 삼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알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목적이 벗음을 엄숙히 선언하면서 세 군주들은 다음의 조항에 합의한다. ”

본문

모든 인간은 서로 형제라고 가르친 성경 말씀에 따라서 세 군주들은(a 세 체약국의 신민들은) 진실하고 끊을 수 없는 우애의 결속으로 단결되어있고 세 군주들은 서로가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어떤 경우나 또 어디에서나 서로 원조와 지원을 보내주면 자신들은 자국의 신민과 군대에 대하여 가장(家長)으로 자처하여 세 군주들이 종교, 평화 그리고 정의를 보호하려고 하는 그런 박애의 정신으로 이들 신민과 군대를(b 같은 군대의 일부분으로 서로 간주될 각자 군대) 지도한다

 

2: 세 나라는 한 가족의 분파로서 구세주가 가르치는 원칙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3: 열강의 가입을 권유

 

3.신성동맹의 발표와 평가

 

열강의 가입

1815926일 세 군주들은 신성동맹 조약에 서명하고 열강의 가입을 요청

-영국

카슬레이의 보고서 : “숭고한 신비주의와 난센스에 불과

106일 알렉산드르에게 거절

-프랑스

알렉산드르가 다른 두 군주와 상의도 없이 루이18세에게 요청

1119일자 서한으로 가입 수락

-스위스

크뤼데너 부인의 아들 폴의 노력으로 스위스도 동참

-미국

1816년 알렉산드르는 미국에게도 가입요청

1820년 미국 국무장관 애덤스는 1783년 이후 유럽체제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기본정책이라고 가입 거절

-영국, 터키, 법왕청을 제외하고 유럽 주요 국가들이 모두 가입

-()터키정책? 신성 동맹은 비기독교인에게 어떠한 적개심도 함축하지 않고 있다.

 

발표

세 군주는 적당한 시기라고 동의하는 시점에 가서 발표하기로 일단 합의

알렉산드르: 1815년 성탄절에 신성 동맹의 전문 발표

181622일자 프랑크프루트 신문,26일자세계신보에 신성동맹의 내용 발표

1816115일자 오스트리아 관찰자: 메테르니히 신성 동맹에 관한 글

 

평가

카슬레이: 숭고한 신비주의와 넌센스 - 1815928일자 리버풀에 보낸 보고서

메테르니히: 공허하고 요란한 유물 - 그의 회고록

“19세기 외교문서집 속에 괴이한 유물로 남을 것

1820년 트로파우 회의: 혁명은 신성동맹의 결과라 여겨 강한 비판

19세기 자유주의: 신성동맹은 인민을 억압하기위한 군주들의 동맹

아노토: 일종의 제국주의 적이고 신비스런 국가들의 연합으로 열강의 프랑스에 대한 동맹

말레: 신민에 대항하는 군주들의 상호 부조사회

긍정적인 인식: 영국의 필립스, 스위스의 트라즈

국제연합의 탄생이후 부르캥의 연구에서 국제기구의 선례로 각광

센크: 평화와 곤용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세우려는 순수한 의도

베르티에: 반동적인 것은 타국의 내정간섭을 규정한 4국동맹

레이: 신성동맹을 알렉산드르의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

신성동맹은 러시아의 팽창 정책의 한 표현

 


4절 유럽 협조 체제


 

1. 전후처리 - 엑스--샤펠 회의

 

용어의 문제

빈회의 이후 회의 외교 congress diplomacy’,'회의 체제 congress system' 또는 유럽협조concert of Europe’

diplomacy가 등장

congress VS conference

reunion: conference와 같은 규모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임

1830년대부터 유럽협조라는 용어의 등장 1856년 파리조약의 조문에 사용된 후 1870년대에 들어서 유럽에서 크게 유행

 

4국 동맹조약 제6조의 내용과 목적

181511204국 동맹 조약 제 6조의 규정 - 국제법적 제도화

국제사회의 조직화를 위한 첫 시도

국제정치의 강대국 중심을 명확히 함

 

회의 외교의 목적

프랑스에 독재자 출현 방지, 혁명 방지

1814~1815년의 국경선유지

1815년 당시 근본 국제정치 질서 유지

 

엑스--샤펠 회의의 구성문제

프랑스 주둔 연합군의 점령기간 만기로 4국의 문제토의 필요성 대두(1818.11)

9월초 4국 동맹 6조에 의한 정기회의 처음으로 개최

러시아: 프랑스와 스페인의 참가 주장, ‘일반 동맹에 프랑스 참여시키되 기존조약을 엄격히 준수해야함

프랑스도 4국 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러시아와 협력 “5국 동맹 체제주장

알렉산드르는 스페인을 통해 남미지역에 진출하려함, 프랑스도 스페인 정치 불안을 빌미로 내정간섭을 하려함

러시아와 프랑스 정책을 영국, 오스트리아는 용납하지 않음 관철 되지 못함

 

엑스--샤펠 회의(18189~11)

프랑스의 리슐리외는 프랑스 선거이전에 외국군의 철수와 4국과 동등한 위치를 획득하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 카슬레이에게 영국의 동의를 구했으나 거부

알렉산드르 1세에게 다시 동의를 구했으나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함

프랑스의 혁명위험성의 상기로 점령군 철수문제를 먼저타결(1818.10.9): 철군기한은 늦어도 18181130일까지이며, 18151120일 제 2차 파리 평화조약 제4조의 배상 총 액을 모두 26500만 프랑으로 확정

철군문제 해결 이후 러시아 유럽체제의 변혁 요구

 

카포 디스트리아 비밀각서

일반 동맹- 엑스--샤펠 회의중 파문을 일으킴

“1814~1815년의 조약들로 이루어진 유럽체제는 물질적인 기초와 정신적인 기초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질적인 기초란 연합국의 프랑스 점령인데 이 기초는 없어지게 되어 정신적인 기초(4국 동맹 조약, 신성동맹 조약)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선언채택 주장과 스페인, 미국 참가시키려는 움직임은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반대로 무산

러시아의 일반 동맹안 의견 조정, 프랑스 강대국 대열에 참여 결정

 

엑스--샤펠 의정서(1818.11.15)의 내용과 의의

전문, 본문5개 항목 그리고 부속문서인 5국 정부의 선언으로 구성

5국은 기독교의 우애로 단결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평화유지에 목적이 있으며, 종교적 존중에 근거함

합법국가로 회복된 프랑스는 현 체제의 유지와 강화에 동의

회의가 필요할 시 외교통로를 통해 결정

의정서의 결정사항은 모든 국가들에 공표

‘5국 정부의 선언이라는 특수문건으로 엑스--샤펠 회의의 결과를 세상에 알림

국제법과 열강의 독립을 언급한 점에서 영국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선언이 신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신성동맹을 강화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회의로 나폴레옹 전쟁의 전후처리는 끝나게 되었고 프랑스는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2.회의외교

 

빈 체제 반대 움직임과 열강의 탄압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혁명의 움직임은 존립의 문제로 직결 그러나 영국은 방관자적 태도를 취함

빈 회의 체제에 대한 도전은 엑스--샤펠회의를 거치면서 유럽각지에서 시작됨

메테르니히의 탄압: 영국의 무관심 때문에 가능 소요를 특정국가의 단독적인 간섭이 아니라 유럽협조체제의 이름으로 공동으로 간섭할 것을 주장

스페인의 반란: 알렉산드르 1세 격분, 혁명이 유럽전역으로 퍼지기전에 스페인 국왕 후원을 역설

영국의 대응: 카슬레이는 불간섭을 원칙으로 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4국에 통보

이후 유럽협조체제 간섭이냐 불간섭의 기로

 

트로파우 회의(1820.10~12)와 라이바흐 회의(1821.1~5)

영국은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에 간섭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원리가 있다고 양해

프랑스와 러시아의 국제회의 소집 메테르니히는 영국과 러시아의 타협안 마련 타결

트로파우와 라이바흐 회의는 메테르니히의 승리로 끝남

18201119일 세 군주들은 예비 의정서에 합의 : 메테르니히의 정치적인 입장과 알렉산드르의 구상을 그대로 반영

이후 3국은 해외공관에 서한 발송

영국: 영국은 합의의 당사자가 될 수 없으며, 예비 의정서라 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 못 박음

라이바흐 회의는 트로파우 회의의 연장

512일 공동선언에서 트로파우 회의의 결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폴리 진압을 공포

두 차례의 회의를 통해 유럽 협조 체제의 성격이 변화됨

영국은 공식적으로는 반대 입장이나 배후에서 오스트리아 지지

 

베로나 회의(1822.10~11)

유럽협조체제를 좁은 의미로 해석할 때 그 시기의 마지막 회의

이탈리아 토의 문제를 위해 소집되었으나 카슬레이의 거절로 메테르니히는 당시 현안문제로 등장한 그리스 문제를 토의하는 빈 주재 열강 대사회의 개최하고 카슬레이를 초청

그러나 카슬레이의 자살로 유럽협조체제 자체에 문제 발생

후임 캐닝의 훈령은 영국은 어떠한 경우라도 스페인 문제의 당사자가 되는 것을 금지

그리스 문제와 스페인 문제로 토의, 화의에선 서로 밀접하게 연관: 러시아의 동방진출 저지를 위해

그리스 독립문제

메테르니히의 활약으로 러시아의 공동 간섭안이나 프랑스의 단독개입주장도 저지됨

혁명원칙을 단호히 반대하며 그리스 혁명을 비판하고 스페인으로부터 공관을 철수 한다는 결론

 

프랑스군의 스페인 진주

프랑스 정부는 국내의 불만세력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스페인 간섭이 필요했고 또 프랑스의 권위를 높인다 판단 따라서 베로나회의 이전부터 프랑스의 무기 공급과 감시군의 파견

단지, 화의 중에는 영국의 반대와 프랑스 내부의 불일치로 단독개입이 허용되지 않음

1823년 샤토브리앙이 외상이 되면서 프랑스 영광 되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영국을 견제하고 러시아와의 접근을 추진하면서 1월말 프랑스는 스페인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스페인에 진주

프랑스의 단독 개입 움직임에 영국의 캐닝은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허사였음

따라서 1823년 파리주재 영국대사에게 세 가지 조건을 프랑스가 동의하면 영국은 스페인문제를 중립을 지키겠다고 타협

트로파우 회의를 계기로 유럽협조체제의 와해 조짐

 

3. 유럽협조체제와 미국-먼로주의

 

배경

1823123일 미국대통령 먼로의 연두교서의 내용

18219월초 러시아 황제의 칙령

프랑스가 스페인의 아메리카 구 식민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

프랑스의 움직임에 대해 영국의 캐닝은 미국과 대처를 구상했으나 미국의 전제조건을 수용할 수 없어 실패, 이후 프랑스와 직접 교섭 - 장차 스페인의 구식민지에 어떤 영향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냄

미국의 먼로선언으로 유럽협조체제는 붕괴위기에 직면

 

내용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열강의 식민대상이 될 수 없다

아메리카와 유럽의 정치제도는 상이하며, 유럽 국가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간섭은 비우호적인 것이다.

미국은 유럽열강의 국내문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

-주요 내용은 비식민과 불간섭 원칙

 

의의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먼로주의라고 불리면서 미국외교정책의 기본적인 명분으로 등장

당초 먼로주의는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팽창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소극적인 내용

19세기 중엽이후 팽창주의 적 명분으로 변모 이후 일종의 종교적인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됨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에 적용되지 못함

특정시기의 미국국익을 정당화해주는 미국외교정책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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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27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1466248807 2016.06.18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가여~

  3. 1466902748 2016.06.26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가여~

세계외교사 연표


유럽에 있어서 민족주의와 세력균형

독일·이태리 민족국가 탄생과 영국에 의한 세력균형

유럽의 세력균형 변화와 극동에서의 세력균형

 


1789 프랑스 대혁명


1792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전쟁


1796-1815 나폴레옹 전쟁


1814 빈회의


1815 신성동맹 형




1853-56 크림전쟁


1870 독일, 이태리 통일


1873 비스마르크, 프랑스 고립.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 3제협상


1877-78 러시아 터키와의 전쟁 승리. 그러나 베를린 회의를 통해 러시아 발칸반도 진출 좌절


1879 독일-오스트리아 양국동맹


1882 3국동맹


1894 프랑스-러시아 동맹 체결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러시아, 프랑스 분리 노력이 실패)

 



1894 중일전쟁


1898 미서전쟁


1904-05 러일전쟁


1905 을사조약


1910 한일합병조약


 프랑스혁명 전쟁은 왕조간의 전쟁이 아니라 전쟁의 형태를 취한 국제 규모에 있어서의 계급투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혁명은 신권왕국의 입장에 선 부르봉왕조의 통치를 인민주권론의 이름으로 부인한 것이다. 여기에 대응하여 처음으로 전유럽적 규모의 세력균형이 적극적으로 시도되었다. 이후 나폴레옹을 몰락시킨 러시아에 대한 공포로 전환된 가운데 빈회의 이후 정통주의와 세력균형을 지도원리로 하는 복고의 시대로 돌아간다


 그러나 각국의 피지배계급은 이미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선언 뒤 절대주의적 정치체제가 타도되는 것을 목격하였고, 혁명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서 프랑스의 세력 하에 놓인 지역에 혁명의 성과가 이식, 도입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치열한 전유럽적 세력균형과 민족의식이 발달하는 역사 속에서 빈회의 후 각국의 피지배계급, 피지배민족 간에는 정치적 자유운동, 민족적 해방운동이 발전되어 국제정치의 중요한 축으로 역할하게 된다.

 독일, 이태리 2대 민족국가의 탄생으로 유럽국제정치의 진전은 빈체제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이것은 빈회의 이후 세계정치에 있어서 영국의 우월적 지위를 더욱더 확고하게 하였다. 그것은 영국에 의한 세력균형과 영국해군에 의한 것으로 영국 산업자본의 세계적 우월에 뒷받침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 영국에 의한 평화를 위협하는 것으로 러시아제국이 있었다.


 비스마르크가 제국재상에 있을 때와 지위를 떠난 후 유럽 국제정치에 거대한 변화가 생기게 되는 과정은 그의 세계정치에의 영향을 보여준다. 우선 독일 내 빌헬름 2세의 세계정책에 의한 강력한 제국주의정책과 이것이 영국을 자극함으로 3국협상 성립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 국제정치의 불안정성이 그것이다. 3국협상 성립에 의해 유럽 제국주의 대국은 양분되어 대립하게 된다. ‘영광스러운 고립으로 위대한 균형자로서 역할해 온 영국이 반독 3국협상에 속하게 됨으로서 이제 유럽 제국주의 각국 간의 세력균형은 전혀 우연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는 비유럽에 있어서는 극동에 있어서 미·의 등장으로 진전한다. 미국은 1823년 먼로주의 선언으로 유럽의 세력균형으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있어서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다. 미서전쟁 후 동아시아 영토로 진출하면서 극동국가로 등장한다. 그후 만주 및 한국을 둘러싼 러일전쟁은 일본과 러시아 양국 사이의 전쟁일 뿐 아니라 전쟁의 진행 및 수습에 서양제국주의 각국이 관여하여 러일전쟁과 세계정치와의 연관을 갖게 하였다. 특히 미국은 화평주선을 함으로써 러·일 양국간에 세력균형을 수립케 하였다. 더 나아가 러·일전쟁과 세계정치와의 연관은 패전 후 러시아 제국주의가 팽창의 방향을 극동에서 발칸반도로 전환해 제국주의적 대립을 격화하게 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세계 각국에 자본주의 성장은 제국주의 시대를 가져오며 세계정치의 중심점은 다원화되기에 이르렀다. 유럽대국들, 다음에 미·일이라는 비유럽국가가 세계정치에 등장하면서 그와 함께 영국에 의한 세력균형, 영국에 의한 평화시대와 다르게 세계정치의 중심점은 현저하게 다원화된 것이다.


 교린질서의 붕괴와 이후 제국주의 세계정치 질서 속에 강제 편입된 한국은 씻을 수 없는 과거를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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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외교사를 수강하며 작성한 발제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변환의 세계정치, 5장 국제냉전질서의 국제정치이론과 한국


 

본 텍스트의 구성

- 발제를 하는 본 텍스트는 저자(이근욱)의 주관적 생각에 따라 내용이 구성되어 있음

- 새로운 현실은 새로운 이론을 필요. 현실과 유리된 이론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논리적일 수 있으나 현실을 설명하고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험적인 차원에서 결과적으로 기각

- 현실주의이론은 민주주의 평화에 있어, 맑스주의 시각은 중국의 경제성장 측면에서 비판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 : 냉전에 대한 무도덕적 이해와 국제적 갈등

 

전통적 현실주의이론 : 모든 국가는 권력을 추구한다

현실

냉전의 발생

이론가

투키디데스Thucydides,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

전제

인간의 본성이 공격적이고 권력을 추구, 특정 국가의 도덕적 열망과 보편적인 도덕원칙은 다름

이론

현재 유지되고 있는 세력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현상유지정책status-quo policy, 현재 세력균형에 도전하는 현상타파정책revisionist policy

현실 설명

(냉전) 미국 현상유지정책, 소련 현상타파정책 추진. Not 악마적인 공산주의 세력에 대응하는 선량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대립 But 두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갈등

 

안보 딜레마 이론 : 원하지 않는 충돌

현실

1960년대 데탕트라고 불리었던 긴장완화와 미·소간 협조

이론가

허즈Herz, 로버트 저비스Robert Jervis

전제

한 국가의 군사적 준비가 다른 국가의 심리에 있어 그와 같은 준비가 단지 방어적인목적인지(불완전한 세계에서 자신의 안보를 증진시키려는) 아니면 공격적인 목적인지(자신의 이익에 맞게 현상을 변경하려는)에 대한 풀 수 없는 불확실성 존재

이론

자신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가 다른 국가들의 안보를 저해. 안보딜레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지리적 변수와 현재 상황에 대한 개별국가의 믿음 등과 함께, 공격수비 균형과 공격수비 구분 가능성

현실 설명

냉전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특이한 공격수비 균형과 공격수비 구분 가능성 상황에서 벌어진 의도하지 않았던 국제정치적 경쟁.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축적, 선제공격을 받고도 상대에게 보복이 가능한 핵무기 개발되면서 군사기술이 방어우위와 공격 수비 구분 가능 상황으로 변화. 따라서 데탕트는 소련이 공격적이고 팽창적인 현상타파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군사기술의 변화를 통해서 본래부터 현상유지 정책을 추진했던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확실하게 수용했기 때문 가능

 

신현실주의이론 : 무정부 상태에서 불가피한 국가간의 충돌

현실

미국과 소련의 데탕트

이론가

월츠Kenneth Waltz

전제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갈등 야기(본능무정부성 국제체제)

이론

무정부 국제체제에서는 정치적인 차원의 분업이 존재 할 수 없음. 국제정치의 변화는 강대국의 숫자로 정의되는 국제체제의 구조에 의해서 파악, 다극체제, 양극체제, 일극체제

현실 설명

불확실성이 강한 다극체제에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발발. 양극체제의 대립인 냉전시기에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등은 국제체제 전체를 포괄하는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았음, 쿠바 미사일 위기도 핵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음, 냉전은 안정적

 

강대국 순환론 : 패권국과 도전국의 순환

현실

중국의 쇠락

이론가

로버트 길핀Robert Gilpin

전제

강대국과 패권국은 순환

이론

위계질서에 가까운 무정부 상태. 과대팽창은 과대비용으로 인해 패권국은 결국 쇠태. 새롭게 등장한 세력균형에 적합한 새로운 국제체제가 만들어며, 이 과정에서 패권전쟁이 발생

현실 설명

16~17세기 스페인의 패권은 17~18세기 프랑스의 패권으로, 그리고 19세기 영국의 패권으로 변화. 이 과정에서 대규모 전쟁 수행. 또한 20세기 초 영국의 패권에 대해서 독일이 도전하면서 벌어진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패권국과 도전국 이외의 제3의 국가인 미국과 소련의 패권을 가져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패권국의 순환은 계속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 : 데탕트와 유럽통합, 그리고 국제협력

-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은 주로 국가간의 갈등과 경쟁, 전쟁이라는 현상에 주목.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주권과 권한을 다른 단위체에 이양하며, 군사력 사용을 제한받음.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론체계가 필요

 

통합이론 : 유럽국가들의 경제협력과 통합

현실

ECC, EU 등장

이론가

미트라니Mitrany, 하스Haas

전제

국제적 무정부 상태가 항상 갈등과 불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여러 방법을 통해서 협력하고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

이론

기능주의 - 중요한 행위자 Not 개별 국가 But 경제통합을 통해서 이익을 보고 더욱 높은 수준의 통합을 요구하는 국내 이익집단

신기능주의 - 어떠한 원인에서든 일단 창설된 국제기구와 그 구성원은 출신국가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더 높은 수준의 통합을 추진

이와 반대로 현실주의이론은 유럽통합은 개별 국가가 결단, 국가에서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이며, 각 국가와 정부의 이익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분석의 초점을 맞춤

현실 설명

확산효과와 국제기구의 역할에 따라 새로운 체제 건설 가능했음

 

상호의존이론 : 권력과 복합적 상호의존

현실

1970년대 미국의 경제적 우위 쇠태, 1차 오일쇼크

이론가

로버트 코헤인Robert Keohane, 조지프 나이Joseph Nye

전제

군사력에 기초한 힘과 경제력에 기초한 힘은 서로 다르며 동시에 서로 호환될 수 없음

이론

힘의 새로운 원천으로서 비대칭적 상호의존 제시. 중동국가들이 석유가격을 일방적으로 인상했을 때, 해저 유전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에 비해 자체 유전이 존재하지 않는 일본이 더욱 힘이 약함

현실 설명

군사적인 우위가 경제적 다극체제 구축을 막지 못했으며, 석유가격 상승이라는 문제에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음

 

제도주의 협력이론 : 국가들의 지속되는 협력

현실

1970년대 이후 데탕트 분위기가 확산되고 미국의 경제적 우위가 축소됨에 따라 다른 국가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아짐

이론가

코헤인Keohane, 오이Oye

이론 및 현실 설명

공동의 이익이 존재하지만 국가들이 협력을 통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는 원인은 거래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서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불확실성의 증가 때문. , 서로의 협력 의사를 확인하고 상대의 협력 행동을 확인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서.

대안

서로에 대한 감시와 상대방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 제거, 거래비용의 감소를 가져오는 국제제도는 협력을 촉진할 수 있음

 

맑스주의 국제정치이론 : 세계질서와 경제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

 

세계체제론 :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생산분업

이론가

칼 맑스Karl Marx,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월러스틴Wallerstein

전제

어느 정도 위계질서가 있으며, 이러한 위계질서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존재

이론

세계경제 중심부에 위치한 국가는 강대국으로서 세계체제를 관리하며, 주변부에 위치한 국가는 중심부 국가의 관리 대상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일어나면 과거에는 중심부 국가였지만 쇠퇴하여 반주변부로, 그리고 주변부 국가로 전락할 수 있으며, 동시에 반주변부 국가인 경우에도 발전을 가속화하여 중심부 국가로 부상하기도 함

 

종속이론 :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전략

현실

중남미 국가들의 쇠퇴

이론가

프랑크Frank

이론

후진국가는 선진국가에 값싼 자원과 노동력을 제공하게 되고 선진국가는 후진국가에게 효율성이 떨어지는 기술만을 이전하며 선진국가와 후진국가의 경제적인 격차는 줄어들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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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외교사를 수강하며 작성한 발제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변환의 세계정치, 1장 근대 국제정치질서와 한국의 만남


 

 

문명권의 정신구조

국가나 사회는 대외 문제에 대하여 무의식적인 충동으로 반응한다. 그런 반응은 그 국가나 사회가 지니고 있는 정신 구조의 발로이며 오랜 역사로부터 나오는 지적 유산이다. 나는 외교사 서술의 분석 단위를 국가로 하되 그 단위의 정신 구조를 형성한 문명권의 존재를 강조하는 입장을 견지한다.[각주:1]

 

인간의 역사는 사랑과 증오에 관한 서술이라는 김용구의 견해를 인용하면, 1장의 내용은 서구권 안에서만 지켜지는 근대서구국제질서와 대비되는 제국질서가 서양과 동양의 충돌로 이루어졌으며 서로가 자신을 보편이자 문명표준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상대방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그들의 증오가 폭력적 충돌로 이어졌고, 한국은 이 와중에서 타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 한편으로는 타자의 힘을 동경하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맛보았고 이것은 아직도 상호간의 신뢰회복과 소통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풀어가야만 할 현재진행형 과제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근대 서구국제질서

근대 이전 제국질서 : 제국의 중심을 지배하는 정치세력은 문명의 중심으로서 주변의 정치세력들을 위계적으로 복속시킴. 제국 내에서 복수의 평등한 정치적 권위는 인정되지 않음

근대세계질서 : 대내적으로 절대적이고 대외적으로 평등한 주권을 지닌 국가들에 의해 형성

15세기에서 19세기에 서구의 중세에서 근대로의 점진적 이행의 단계 : 주권국가간 국제질서와 제국주의가 동시에 진행된 서구국가체제의 이원구조

서구는 비서구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자기변환을 통해 서구의 기적을이룰 수 있었다

 

근대 국제정치질서의 성격과 팽창

근대국가의 발전 : 서구의 중세질서 근대 국가경쟁적 공존 국제질서

중세질서의 이원성 - 보편적 정당체계 : 단일한 기독교 공동체의 보편적 이념

- 분절적 지배구조 : 중세의 영토지배, 분절적·중층적 정치적 권위

대내적 주권 : 영토에 대한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지배의 권위

대외적 주권 : 복수의 (대내적) 주권의 독립성과 평등

근대국가의 발전은 ¹영토군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²그 자의적 지배를 제한.

¹ 영토군주 세력의 부상과 교권 하락 : 교황청의 아비뇽유수(1305~1378), 교회의 대 분열(1378~1417), 16세기 종교개혁, 프랑스 가톨릭과 개신교 내란(1562~1598)

² 민주주의 발전 : 영국 명예혁명(1688), 프랑스 대혁명(1789), 1848년의 혁명

서구근대국가의 발전이 지니는 근대성: 제국질서를 대체하는 주권개념, 신분에서 해방된 보편적 인간의 정치적 기획으로서 민주주의,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력의 자연적 한계를 극복하고 부의 생산과 분배에서 정치적 제한의 철폐를 요구하는 자본주의

세력 균형 : 서구의 정치적 분립은 강대국들의 세력균형에 의해 유지

- 절대왕정시대 : 단일 왕가에 의한 강대국들의 통합 가능성이 정치적 분립 위협

- 빈회의 이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정당한 세력균형의 현실적 기반은 영국의 패권, 유럽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서구국가체제의 이원구조, 서구 안의 국제질서와 밖의 제국주의가 영국의 힘에 의해 분절

서구제국주의 : 1815년의 빈회의가 서구 안에서 주권국가들의 협력을 제도화했다면, 베를린회의는 서구 밖에서 주권을 명분으로 주권을 박탈하는 서구제국주의의 집단적 위선을 제도화

 

전통적 중화질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질서를 도모하려는 유교적 사유체계에 기반. 따라서 천하질서에서 국가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주요한 행위자로서 용인되면서도 이념적으로는 근대국제질서의 행위주체인 주권국가처럼 강고한 배타적 실재로서 인식 될 수 없었음

중화질서 내부에는 주변부의 인식과 현실 간에 불가피하게 괴리가 발생할 소지가 항시적으로 존재하였으나 장기적으로는 예적(禮的)인 질서이념 하에 끊임없이 해소될 수 있었음

 

문명표준의 역전

이질적인 문명이란 하나의 문명표준에 의거해서 보면 대개 야만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음

서구 근대국제질서 원리에서 국제사회의 일원, 즉 국제법적으로는 국제법적 주체가 될 수 있는 요건으로서 문명이라는 자격요건이 요구 ; 동아시아국가들이 구미국가와 맺은 조약이 하나같이 일방적인 불평등조약이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문명적 요소의 미비라는 명분에 의한 것

서구의 국제질서와 전통적 중화질서의 만남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문명표준의 역전 현상을 가져왔음

중국 : 서구국제사회의 문명 표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근본적 어려움을 갖고 있음. 지금까지 중화문명권에서 문명표준을 제공하던 입장에서 유럽문명권의 문명표준에 의해 스스로를 재편해야하는 입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

일본 : 문명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게 되고 문명을 오로지 힘과의 관련성에서 이해하게 되었음. ‘개화의 등급으로 표현된 문명 대 야만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서구의 문명표준에 눈뜨지 못한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일본인들의 열등의식은 개화에 무관심한 조선이나 중국에 대한 멸시와 혐오의 감정으로 나타나게 됨

 

한국의 동요

중국과 일본은 이미 구미열강의 세계균형 속에 편재

중국 : 조공국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전통적 사대질서를 부정, 조선에 대한 종주권 기획(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직접 지배 강화, ·청상민수륙무역장정)

일본 :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적 근대화. 전통적 교린질서, 더 나아가 중화질서 전반의 전복 기획(강화도 조약을 통해 일본이 조선에서 중국의 종주권을 부정)

청일전쟁(1894)으로 이어지는 조선을 둘러싼 중·일의 대립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한 영국의 거문도점령(1885~87)이 상징하듯, 세계적 차원의 세력균형의 틀에서 이루어졌음

지역적·세계적 차원에서, 그리고 힘과 명분의 측면 모두에서 제국주의의 중층적인 압박은 조선의 독자적인 체제 변환의 가능성을 부정

 

세계대전

유럽문명권은 유럽 내에서는 주권국가간 관계, 국제의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지구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비서구지역에서는 제국의 모습을 추구하고 있었음. 이처럼 제국주의의 활극장이 되어버린 세계는 바야흐로 인류사의 가장 비극적인 시기를 맞이하게 됨

제국주의, 민족주의, 유럽 세력균형의 와해가 주요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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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100년간의 평화[각주:2]와 이와 대비되는 제국주의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었는가가 이번 발제에 핵심이다. 대외적 주권이라는 복수의 (대내적) 주권의 독립성과 평등을 인정하는 경쟁적 공존 국제질서에서 어떻게 서구의 강대국들은 다른 문명권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행동을 취했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서로 다른 문명권의 정신적 구조에 따라 서로를 야만으로 규정하고, 서구는 다른 문명권의 국가들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발발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이원성은 근대국제질서 이전의 제국질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발제자 본인은 이러한 이원성이 인식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의 역사적 조건에 전체에 기반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요컨데, 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오랜 평화(혹은 백년평화)가 이루어지며, 밖에서는 제국주의의 팽창이 이루어졌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문명표준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윤에 동기가 있음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중세 봉건제

계급 : 영주-농노, 물리력에 의한 경제외적 강제[각주:3]에 기반

분절적 정치 구조 : 물리적 강제력, 즉 군사력 소유양식의 분산성[각주:4]

상품·화폐관계 및 농촌과 연결된 도시경제를 발전시키고 농민적 저항이 지배층의 양 보를 받아내는데 유리하게 작용함으로써 봉건제의 해체와 자본주의의 발전을 크게 촉진

국제 질서 : 새로운 영토 정복 전쟁의 각축[각주:5]

근대 자본주의

계급 : 자본가-임노동자, 자유로운 계약[각주:6]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반

근대 국가 : 일정한 영역 안에서 정당성에 의해 뒷받침되는 물리x    적 강제력을 효과적으로 독점한 제도적 지배기구[각주:7]

군사자원 및 군사기술의 혁명적 변화 : 기사군 중심의 군사양식의 퇴조와 보병군 중심의 군사양식 등장, 장창과 원시형태의 소총 및 대포가 기본무기로 사용[각주:8]

민주주의 : 자유로운 계약을 위한 신분적 해방(농노임노동자), 군사자원 확보를 위한 국가의 노력과 시민사회의 저항[각주:9]

민족주의 : 신분철폐를 부르짖으며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프랑스대혁명이 동시에 신분으로 나뉘어져 있던 프랑스 민족을 하나로 묶는 민족주의임을 상기, 하층민들도 프랑스의 시민으로서 나폴레옹 전쟁에서 모든 국민은 군대에 동원

무역의 자유주의와 보호주의 : 세계체제는 ¹자본주의의 호황 등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발전을 선도하는 나라의 세계적 헤게모니 하에서 자유무역주의적 질서가 민족국가들의 상호번영을 가능케 한 안정적 발전국면과 경제위기의 도래 등으로 각국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국가간의 갈등이 전쟁 발발과 가은 사태를 불러일으키며, 각국의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대중의 저항이 격화되는 대혼란 국면을 거치면서 발전[각주:10]

세력균형 : 각국의 부르주아지들은 이해관계상 전쟁보다는 산업, 무역 및 식민지 확장 쪽으로 19세기 국가의 정책을 방향전환[각주:11]

 

중화 질서

중화질서는 조공과 책봉에 기초한 봉건제 질서. 중화질서의 위협은 그들의 정신 구조를 형성한 문명권의 위협이자 경제정치체제 자체에 대한 위협. 봉건영주(혹은 지주)들의 반발은 당연

 

지난 4~5세기 동안 대규모의 전쟁과 그 전쟁을 마무리하는 국제적 협약들이 유럽식 근대국가 체제(국제정치적 의미와 국내체제 양면 모두에 걸쳐)의 모습을 결정짓는 결정적 계기였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들이 전쟁을 만들어 냈지만 동시에 바로 그 전쟁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국가들을 만들어 냈다고 하는 틸리(Tilly)의 말은 단순히 인상주의적 표현 이상의 말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태생부터 전쟁 지향적인 근대 국가는 비록 비스크마르크나 카부르가 상당한 진실성을 보여주었으나, 주권적 실체로서의 모든 국가의 평등성이라는 추상적이고 본질상 허구적 개념에 의해 오랜 평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경제적 이윤에 의한 자유주의가 그 기반이다. 다국체제에서 국민국가와 자본의 입장은 서로 상반되며, 이는 현 자본의 세계화와 대비되는 국민경제의 피폐성에서도 극명히 드러나는 문제이다.

 

 

국민국가(민족주의)와 자유주의에 대립에 기반한 연표

1776 아담 스미스, 국부론출판

1789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영국-대륙간의 무역 자유롭게 진행X]

1819 리카도, 정치경제론에서 비교우위론개념 등장 - 무역의 자유주의 주장

1839 콥든 반곡물법리그형성

1848 프랑스에서의 제2공화정 형성

1849 항해법 폐지

1853-54 영국, 프랑스, 터키, 러시아 크리미아 전쟁

1859 다윈, 종의 기원출판.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민족주의 형성 기반

1860 콥든-슈발리에 무역조약. 최혜국대우 조항

민족주의, 식민지 경쟁의 시작

1871 독일 통일.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 50억 프랑의 보상금과 알사스-로렌 지방을 할양받음, 그러나 과거의 영지를 떼어주는 개념이 아니라 민족을 분단, 전쟁 승리의 원인을 게르만족의 활력과 라틴족의 탈진으로 설명(사회진화론에 근거한 민족주의)

1873 뉴욕과 비엔나 증권시장 붕괴 보호무역 정책 증가, 영국은 계속 개방 일관

비스마르크 프랑스 고립,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 삼제동맹

1877-78 러시아 터기와의 전쟁 승리. 산스테파노 조약(78). 그러나 비엔나 회의를 통해 러 시아 발칸반도 진출 좌절

1879 비스마르크 무역 보호주의. 독일-오스트리아 이국동맹

1881 프랑스 관세체제

1894 프랑스-러시아 동맹 체결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러시아, 프랑스 분리 노력이 실패)

1892 메린느 관세제도

1895 막스 베버, 독일 제국주의 필요성 주장

1898 - 프 아프리카에서 충돌, 파쇼다 사건

- 스페인 미서 전쟁

1903 세르비아 군사쿠테타, 1878년 이래 친오스트리아왕조 붕괴

1900-14 자유주의 질서 절정기

  1. 김용구, 『외교사란 무엇인가』, 도서출판 원, 2002. [본문으로]
  2. K, Polanyi, The Origins of Our Time : The Great Transformation (Lodon, 1945), ch1. [본문으로]
  3. 토지 소유권, 인간의 인격적 소유 및 재판 행정권 E.A Kosminsky, Studies in the Agrarian History of England in the Thirteenth Century. [본문으로]
  4.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세력에 의해 당시 필요로 하던 군사자원(병력과 이의 유지에 필요한 물적자원)의 대부분이 제공되던 중기마병 중심의 봉건제적 군사양식에서는 군사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분권화의 경향이 불가피하게 된다. 다음의 문장은 초기의 서양 역사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사회전체는 끊임없는 사적 전쟁상태에 놓여있었다.” C.W. Previté-Orton, The Shorter Cambridge Medieval History, Vol.1: The Later Roman Empire to the Twelfth Century(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2), p128. [본문으로]
  5. 봉건제적 분산적 정치질서는 무력수단의 소우가 곧 생산수단 소유의 기반이 되고 또한 무력이 잉여생산 수취의 직접적 수단이 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역사사회학적 성격이 드러난다. 중세후기인 15세기까지 유럽사회에서 농업생산성과 무역량은 비록 정체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성장속도는 새로운 영토정복에 의해 얻어지는 수확에 비교할 때 여전히 대단히 느렸다. 앤더슨(Perry Anderson)의 말을 빌려 “당시 봉건제하에서의 지배계급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수단 중에서 아마도 가장 합리적이고 신속한 단일의 잉여수취의 확대양식이었다.” Perry Anderson, Lineages of the Absolutist State(London : New Left Books, 1974), p.31. [본문으로]
  6. 자본가-임노동자는 봉건제와 같은 인격적 예속에 따른 관계가 아니라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관계이다. [본문으로]
  7. Max Weber, Wirtschaft und Gesellschaft [본문으로]
  8. 이를 바탕으로 개인적 전사인 기사가 아닌 조직으로서의 보병군이 중심적 군사양식이 된 당시 상황에서 군사적 승패는 기본적으로 병력규모와 대규모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에 의존하였다. [본문으로]
  9. 새롭게 등장한 체제는 증가된 부담의 균등한 배분, 그 부담에 상응하는 정치참여의 권리부여와 부담에 대한 동의형성을 위한 정치적 제도 마련 보장하는 것이었다. 형평원칙에 입각한 부담의 배분은 지배층의 특권폐지를 바탕으로 하는 부담의 국민화로,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정치적 참여의 국민화를 낳았다. [본문으로]
  10. 안정적 발전국면의 세계체제는 그간 ¹네덜란드가 스페인이 주도한 중세적 세계체제를 해체시키는 데에 앞장서고 자유무역주의적 세계체제를 최초로 성립시킨 웨스트팔렌 조약 체결을 주도함으로써 수립된, 근대적 세계체제 초기의 ‘네덜란드 헤게모니체제’에서 출발하여 ²대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도하고,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이 된 영국이 자유무역주의적 세계질서를 회복시킴으로써 수립된 ‘영국 헤게모니체제’를 거쳐 ³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수립된 ‘미국헤게모니체제’로 발전해왔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공저, 『정치학의 이해』박영사, 2004. [본문으로]
  11. 그럼에도 19세기를 지나면서 나타난 수많은 영토분쟁, 외교적 사건, 식민지에서의 충돌, 지역적 또는 기타의 제한된 무력 분쟁들은 다국체제의 구조 안에 내재하는 긴장을 잘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G. Poggi, 박상섭 옮김, 『근대국가의 발전』, 믿음사, 1995. [본문으로]
Posted by Econom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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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서양철학사를 수강하며 작성한 레포트를 정리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과 자본주의 경제




목차

 

. 들어가는 말

.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 - 탁월성(, arete)의 일종으로서의 사랑

. 사랑은 왜 필요한가 - 사랑과 행복 그리고 윤리

. 자본주의 경제의 물상화(reification)와 사랑(philia)

. 맺음말

 

 

. 들어가는 말

 

 많은 이들은 이 글의 제목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과 자본주의 경제를 보고, 철학적 개념인 사랑(philia)을 경제학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여러 의혹들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이라는 것이 철학적으로 이미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내가 이 글을 통해 철학적 개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을 경제학적인 방법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 큰 반감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경제학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여러 수치들에 대한 고뇌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성찰에 있어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의 개념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의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를 성찰하고자 했던 그동안의 시도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유익함을 이유로 하는 사랑(philia)이 불완전하다고 했던 것에 주로 기초하여 논의를 진행해왔다. , 경제적 이익의 동기로 친분을 쌓고자 노력하는 현대인들을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왔었다.


 이런 협소한 수준을 넘어서는 보통 인격적 사랑의 개념으로 사용되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을 비판해왔었다. 여기서 사랑(philia), phila는 좁은 의미에서의 우정뿐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우정으로 파악될 수 있는 정신-인격적 사랑으로 이해되고 있다.[각주:1] 이는 앞의 논지를 발전시킨 것이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관계가 지배적인 것을 비판하고 정신-인격적인 관계를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그동안 시도되어 왔던 것을 여기서 다시 반복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한 논의들은 분명히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왜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유독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하는 사랑이 지배적인지에 대한 경제 사회구조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 개념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나는 이 글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 개념을 중점적으로 살피며,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왜 그렇게 피상적이며 경제적 이익을 근거로 하여 성립하게 되는지에 대한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이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을 분석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이 탁월성의 일종으로서의 사랑이며, 그것이 윤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논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윤리적인 삶이 시행되기 어려운 이유, 즉 사랑(philia)이 실현되기 힘든 원인을 물상화(reification)를 가지고 설명할 것이다. 이러한 글의 구조는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을 논하며, 이러한 철학적 개념이 현실에 실현되기를 단순히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들이 극복되어야지만 사랑이 실현될 수 있고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밝히는 데에 있다. , 이 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힘을 빌려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하기 위한 시도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 - 탁월성(, arete)의 일종으로서의 사랑

 

 ‘philia’는 주로 우정, 사랑으로 번역되는데, 우리의 어감에는 친구가 될 수 없는 선후배나 부모자식을 포함할 수 있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우정과 다소 차이가 있다. 또 성적인 사랑(eros)과도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philia’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랑(philia)은 일종의 탁월성(arete)이거나 혹은 탁월성을 수반하는 것이다.(EN 81155a3-4)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2권에서 탁월성에 관한 일반적 설명 이후, 개별적 탁월성을 열거하면서 사랑(philia)을 인간관계에서 놀이 이외의 일상적 삶에 공유되는 즐거움과 관련한 중용의 품성상태로 정의하였다.[각주:2] 여기서 인간관계는 부모자식이나 형제지간과 같은 가족 관계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공동체에 소속된 동료 시민까지의 범위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인간관계이다.


 사랑은 일종의 탁월성이기에 탁월성의 구별과 같은 방법으로, 활동으로서의 사랑과 품성상태로서의 사랑으로 구별된다.[각주:3] 품성상태는 상응하는 활동(들의 반복)에서 생기는데, 이는 올바른 행위의 반복에서 올바른 품성상태가 생긴다.[각주:4]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중용에 따른 올바른 활동에 의해 형성된 품성상태이다.


 이러한 탁월성에 기초한 사랑은 유익이나 즐거움과 같이 상대방에게 우연적으로 속하는 것에 의해 성립한 것이 아니다. 유익이나 즐거움과 달리 상대방 자체의 좋음에 의해 성립한 것이며, 유익이나 즐거움 때문에 생긴 사랑은 더 이상 유익과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 사랑이 멈추는 것[각주:5]과 달리 탁월성이 지속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탁월성에 기초한 사랑은 유지된다. 좋음에 의한 사랑은 더불어 유익과 즐거움을 준다.[각주:6] 따라서 이것이 가장 완전한 사랑이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사랑(philia)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연애의 감정이나 우정과 다른 개념이다. 그가 가장 좋은 사랑을 탁월성과 관련지어 생각해본 것 역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더불어 ‘philia’가 인격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상대방 그 자체를 전인격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상대방의 탁월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전체적 인격 그 자체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선함, 고귀함을 사랑한 것처럼 보인다.


 사랑이 탁월성과 결부되어 다소 딱딱하게 보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서로 호의를 가지고 있고, 상대방이 잘 되기를 혹은 훌륭하기를 바라며, 또 그런 호의나 바람이 서로에게 알려져 있는, 그런 사람들의 관계가 사랑이다. 그런데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서로가 좋은 사람인 한에서 바란다. 나쁜 사람은 자신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 대신, 실제로는 해가 되지만 즐거운 것을 선택[각주:7]하지만 훌륭한 사람은 자신에게 좋음과 그렇게 보이는 것을 바라며 실제로 행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지성(nous)은 자신에게 최선의 것을 선택하며, 훌륭한 사람은 그 지성의 설득에 복종하기 때문이다.[각주:8] 따라서 사랑에는 탁월성이 결부되었고, 영혼의 지속적인 상태로서의 탁월성은 순간적인 감정과 구별되기에 사랑 역시 감정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각주:9] 우리에게 다소 메마르게 다가올 수 있다.

 

 

 

. 사랑(philia)은 왜 필요한가 - 사랑과 행복 그리고 윤리


 이제 서로를 이용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은 탁월성을 이유로 하는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각주:10] 그런데 좋은 사람들은 그들 모두 자기 충족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은 불가능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행복을 그것만으로 삶을 선택할 만한 것으로 그리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끔 만드는 자족적인 목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사랑과 행복을 연결하는데 있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이 친구를 필요로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해서도 쟁론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복의 경지에 있으며 자족적인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미 좋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족적인 만큼 그 어떤 것도 추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다. 그런데 친구는 원래자신과는 다른 타인으로서 본인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을 공급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EN 99, 1169b3-22)

 

 플라톤은 그가 썼던 뤼시스(Lysis)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족적인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훌륭한 자끼리는 그들이 비슷한 한에서는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나 해를 줄 수 없고 따라서 서로를 존중할 수 없다. 또 그들이 훌륭한 한에서는자족적이며, 그래서 서로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서로를 존중할 수 없다. 훌륭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비슷함과 훌륭함 둘 중 어느 측면에서도 훌륭한 자끼리는 서소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못 되며, 따라서 친구도 될 수 없다.[각주:11]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뤼시스편에서의 플라톤과 다른 주장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사람이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맞는 것은 주로 유익이나 즐거움을 이유로 하는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라고 말한다.[각주:12] 우연적인 의미에 따른 사랑은 행복의 자족성 요구로부터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필요성과 행복의 자족성 사이의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풀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사태를 보다 자연적으로 고찰하는 사람들에게 유덕한 사람은 유덕한 친구를 본성상(physei)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성상 좋은 것은 유덕한 사람에게 그 자체 좋으며 즐거운 것이라고 얘기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있어서 삶은 지각의 능력으로 정의되며, 인간의 경우에는 지각 혹은 사유의 능력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능력은 '그것의 발현으로서의' 활동을 조회점으로 하며 일차적인 것은 활동에서 성립한다. 그래서 삶은 일차적인 의미에서 지각함 혹은 사유함인 것으로 보인다. 산다는 것은 그 자체 좋고 즐거운 것에 속한다. 왜냐하면 정의에 의해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정의에 의해 규정된 것은 좋음의 본성을 가진다. 그런데 본성상 좋은 것은 훌륭한 사람에게도 좋다. 이것이 바로 산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이유이다. [] 그런데 산다는 것 자체가 좋고 즐거운 것이며 모두가 그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훌륭하며 신적으로 행복한 사람들도 그 누구보다도 삶을 추구할 것이다. 이들에게 삶은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선택해야 할 것이며 이들의 삶이 가장 신적인 행복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EN 99, 1170a13-29)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를 그 자체, 본성상 선택할 만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친구는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유덕한 친구는 그 자체 선택할 만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그 자체 추구하듯이 훌륭한 친구들의 삶 또한 그 자체 추구한다. 좋은 친구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행복의 자족성은 유지될 수 없기에 행복은 가장 완전한 사랑을 내재적 구성요소로 요구한다.


 그리고 인간은 폴리스적이며 함께 살게끔 되어 있는데[각주:13] 인간에게 있어서 함께 산다는 것은 동물처럼 같은 공간에 배정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유 기능인 생각과 말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고유한 인간적인 사회성을 완성시키는 즐거움이 바로 사랑이다. 친구와 함께 지각할 내용은 서로가 존재함을 서로 알고 있는 일이며, 이것이 구체적으로는 함께 살면서 서로의 말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라면, 자신의 존재가 무엇보다 선택할 만한 것이듯 친구의 존재 역시 선택할 만한 것이다. 따라서 행복하게 될 사람은 훌륭한 친구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각주:14]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인간은 본성상 폴리스적이며 이런 본성에 따른 탁월성을 이유로 하는 좋은 사람들 간의 사랑은 행복과 관련 될 수 있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탁월성과 행복에 관한 철학으로 사랑을 고찰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사랑에 관한 철학은 그의 고유한 탁월성과 행복에 관한 철학체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체계의 이해를 위해 잠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사유체계를 가졌던 순자를 언급해보도록 하자. 순자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사회공동체는 같은 공간을 배정받았다는 의미를 넘어선다고 바라본 것과 유사하게 사회구성을 바라본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리를 짓지 않을 수 없고, 무리가 있으면서 나눔이 없으면 쟁탈이 일어나고, 쟁탈이 생겨나면 어지러워진다.[각주:15]

 

 그러므로 고대의 성왕이 이를 위하여 예의로 절제해서 분별했다.[각주:16]

 

 사람은 사회공동체를 이룰 수 있으나, 소나 말은 그것을 이룰 수 없다. 사람은 어떻게 무리를 이룰 수 있는가? 나누기 때문이다. 나누는 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의()에 의해서이다.[각주:17]

 

 여기서 의()에 의한 나눔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을 지성(nous)으로 동물과 구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체계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에 의해 각자 감정을 적절하게 절제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구성에 그 원인이 있다. 이렇듯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면서 일종의 윤리를 필요로 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탁월성과 행복에 관한 철학을 논한 것이 윤리학과 관계가 있듯이 그에 있어 사랑 역시 윤리적인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탁월성에 따른 사랑을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관련지어 가장 완전한 사랑이라고 언급한 것 역시 탁월성에 기초한 사랑이 가장 윤리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 살펴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을 일종의 윤리적으로 요구되는 인간관계로 규정짓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philia)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상대방을 그 자체로 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윤리적 삶을 완성하며 상대방 역시 훌륭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제 사랑은 윤리적으로 요구된다.

 

 

 

. 자본주의 경제의 물상화(reification)와 사랑(philia)

 

 오늘날 많은 이들은 원자력의 치명적인 폐해와 환경파괴의 엄청난 결과에 대해, 관료제와 자본주의의 비인간성 등등에 대해 도덕적인 비난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윤리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은 오늘날 사회에 더욱더 요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현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걱정하듯이, 사회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개인들이 만연한 오늘날 사회에서 개인들을 윤리적 관계로 연결하는 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은 충분히 그 의미를 지닌다.


 현대인들은 현실의 자질구레한 행복과 물질적 쾌락에 만족하며 어떠한 모험도 감행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심한 개인들도 보여진다.[각주:18] 텔레비전과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대표되는 오늘날 청소년층의 불안은 사회가 숱한 깨진 유리조각처럼 숱한 개인들로 원자화, 파편화되어있는 것으로부터 발생한다. 이렇게 원자주의가 만연해있는 사회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폴리스적 본성이 갖는 의미와 그에 따라 탁월성에 기초한 인간관계인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발 더 앞서 나가 왜 개인들은 파편화되었으며, 왜 사랑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되물을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물음들을 자본주의 경제의 물상화(reification)와 관련지어 대답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이 갖는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물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물상화는 사람과 사람의 사회적 관계가 물건과 물건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 경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회적 관계는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품이라는 사물들의 교환관계로 나타난다. 예컨대 선풍기 생산자와 농부의 관계는 직접적인 관계로 드러나지 않고 선풍기와 농부가 생산하는 쌀의 관계로 등장할 뿐이다. 선풍기 생산자는 밥을 먹으면서 농부가 무더운 더위 속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농부 역시 선풍기 생산자가 끼니를 거르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살고 있던 폴리스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탁월성에 따른 관계(philia)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선풍기 생산자와 농부가 서로 호의를 가지고 있고, 상대방이 훌륭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매우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유익을 이유로 하는 관계로 볼 수도 있는데, 그들은 상대방이 얼마나 좋고 훌륭한지에 상관없이 그 사람이 생산한 상품에 대해서만, 즉 외적인 피조물에 의해서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가 확대될수록 이러한 물상화가 더욱더 심화된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교육이 본격적으로 상품화되면서 선생과 학생의 관계는 교육이라는 상품을 두고 생산과 소비하는 사람이 된다. 그들은 선생이 생산하는 교육이라는 상품과 학생이 지불하는 화폐의 관계로 나타날 뿐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당시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사랑(philia)이 성립하던 아카데미의 모습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인간관계에 있어 물상화가 더욱더 지배적인 힘을 얻게 될 때마다 인간관계에 있어 탁월성을 바탕으로 한 사랑(philia)의 관계는 더욱더 성립하기 어려워지며, 윤리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매우 큰 위기를 갖게 된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 사이에 경제적 관계가 아닌 관계를 만드는 시기는 보통 회사에 들어가기 이전인 학생시절이다. 그러나 교육이 상품화되면서 학교는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장소로 전락해버렸고, 학생시절마저 친구를 만들기 힘들게 되었다. 교육의 목적은 우리의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더욱더 비싸게 만드는데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공부에 열중하며 다른 학생들과 경쟁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학생들이 주로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함께 생활하지 못하면서 사랑(philia)의 관계를 맺기 더욱더 힘들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들간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나는 물상화가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인간이 탁월성을 기초로 하는 사랑(philia)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매우 힘들다. 인간의 윤리와 관계되어 있는 사랑(philia)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은, 다시 말해 사람들 사이에 윤리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과 우리가 윤리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의 개념을 분석하고 단순히 그것을 주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에 존재하는 물상화를 비판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오늘날 사회에서 여러 윤리적인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과 기초하여 살펴봐야 하며, 우리가 윤리적인 삶을 생활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 경제가 갖고 있는 병폐-예컨대 물상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상품-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맺음말

 

 지금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과 자본주의 경제의 물상화(reification) 개념들을 살펴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랑(philia)을 일종의 탁월성으로 바라보면서 유익과 즐거움과 같이 우연적인 것에서 오지 않는 지속적인 사랑을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바라보았다. 사랑은 인간의 폴리스적인 본성에 의해 요구되는데 이는 사랑을 탁월성에 기초하여 바라본 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은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이 글의 전반부에 해당된다.


 후반부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에 물상화를 다루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상품, 사물들의 관계로 나타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이 실현되기 힘든 측면들을 설명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philia)은 앞서 본 것과 같이 윤리적인 의미를 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비윤리적인 일들이 크게 문제시되는 것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많은 이들이 오늘날 사회의 비윤리성을 지적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왜 오늘날 사회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지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에 소홀히 해왔다. 나는 이런 점들을 극복하고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사랑(philia)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사랑(philia)이 왜 실현되기 힘든지 분석하였다. 이는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윤리가 문제시되고 있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살핀 것이다. 처음 작업해보는 일이어서 그런지 글이 매우 피상적으로 느껴지고 논지도 많은 부분에서 허술함이 보인다. 다만, 이 글이 오늘날 사회의 윤리 문제에 대해 어느정도 문제제기가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Aristoteles, Aristotelis Ethica Nicomachea (이창우김재홍강상진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제이북스, 2006)

Charles Taylor, The Malaise of Modernity (송영배 옮김, 불안한 현대 사회, 이학사, 2001)

Karl Marx, Capital (김수행 옮김, 자본론, 비봉출판사, 2006)

Platon, Lysis (강철웅 옮김, 뤼시스, 이제이북스, 2007)

김재홍 외,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철학사상별책 제3권 제9,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4

심상태, 인간 : 신학적 인간학 입문, 서광사, 1989

리쩌허우(李澤厚), 정병석 옮김, 중국고대사상사론, 한길사, 2005

  1. 심상태, 『인간 : 신학적 인간학 입문』, 서광사, 1989, p.221 [본문으로]
  2. 일상적 삶에서 찾아지는 나머지 즐거운 일들에 관련해서, 마땅한 방식으로 즐거운 사람은 사랑이 있는 사람이요, 그 중용은 사랑(philia)이다. 이에 반하여 이런 면에서 지나친 사람은, 만일 아무 목적이 없으면 비굴한 사람이고, 만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으면 아첨꾼이다. 그리고 이 방면에서 모자라서 어떤 상황에서나 불쾌한 사람은 일종의 싸움꾼이요, 심보가 고약한 사람(dyskolos)이다. (EN 2권 1108a26-30) [본문으로]
  3. 탁월성에 관한 논의에서 어떤 사람들은 품성 상태(hexis)에 따라, 또 어떤 사람들은 활동(energeia)에 따라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되듯, 사랑(philia)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기쁨을 주며 좋음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자고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장소상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사랑의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처럼 활동할 수 있을 그런 품성 상태를 가지는 것이다. (EN 8권 5장 1157b5-10) [본문으로]
  4. 따라서 탁월성의 경우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거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올바른 사람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된다. 무서운 상황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또 두려워하거나 혹은 배짱 있는 마음을 지니거나 하는 습관을 얻게 됨으로써, 어떤 사람은 용감하게 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욕구나 노여움에 관한 것들의 경우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처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 행동하는가 또는 저렇게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또 온화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방종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동일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 행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행함으로써 그런 저런 사람이 되는 것이니 한 마디로 말하자면, 품성 상태들은 상응하는 활동(energeia)들에서 생긴다. (EN 2권 1103b14-22) [본문으로]
  5. 따라서 이러한 것들[유익 혹은 쾌락을 이유로 성립하는 사랑]은 우연적인 의미에 따른 사랑이다. 사랑받는 사람이 그 자체인 한에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좋음이나 즐거움을 주는 한에서 사랑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은 [사랑을 주고 받는 친구들이] 계속 이전 같지는 않을 때 쉽게 해체된다. 더 이상 즐거움이나 유익을 주지 못하게 될 경우 그들의 사랑 역시 멈추게 된다. 유익한 것은 지속하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 다른 것이 유익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서로 친구였던 그 이유가 사라지고 나면 사랑 역시 해체된다. (EN 8권 3장, 1156a16-24) [본문으로]
  6. 각자는 또 단적으로도 좋은 사람이고 친구에 대해서도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은 단적으로도 좋으며 서로에 대해서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들은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적으로도 즐거우며 서로에게도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 각각에게 자신의 행위들 또 그와 같은 종류의 행위들은 즐거운 것이며, 좋은 사람들의 행위들은 [이런 점에서] 같거나 유사하다. (EN 8권 3장, 1156b7-17) [본문으로]
  7. EN 9권 1166b9-10 [본문으로]
  8. EN 9권 1169a17-18 [본문으로]
  9. 애호(philesis)는 감정(pathos)이지만 사랑은 품성상태(hexis)인 것처럼 보인다. 애호는 [생물] 못지않게 무생물에 대해서도 성립하지만, 사람들이 호응하는 사랑을 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prohairesis)과 함께하는 것인데, 합리적 선택은 품성상태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랑받는 사람들 자체를 위해서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감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품성상태에 따른 것이다.(EN 8권 1157b28-32) [본문으로]
  10. 가장 완전한 사랑은 좋은 사람들, 또 탁월성에 있어서 유사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사랑이다. (EN 8권 3장, 1156b6-7 [본문으로]
  11. Lysis 214e-215e [본문으로]
  12.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대중들이 유익한 사람을 친구로 간주한다는 것인가? 다시 없이 행복한 사람(makarios)은 좋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러한 유익한 사람들은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즐거움을 이유로 찾는 친구들도 전혀 필요하지 않거나 약간만 필요할 터인데 그의 삶은 즐겁고 그 어떤 외적인 즐거움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친구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친구들을 필요로 하지 않아 보인다. (EN 9권 1169b22-28) [본문으로]
  13. EN 9권 9장, 1169b19-20 [본문으로]
  14. 삶은 본성상 좋은 것이고, 좋음을 지각하는 일은 그 자체 즐거운 것이니까.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선택되어야 할 것, 특히 누구보다도 좋은 사람들에 의해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존재가 좋고 즐거우니까. 그들은 그 자체 좋은 것에 대한 지각을 공유하면서, '즉 서로의 존재를 지각하면서' 즐거워한다. 마치 유덕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하듯이 그렇게 또 친구에 대해― 친구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니까― 그러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각자에게 있어서 자신의 존재가 선택되어야 할 것이듯이 그렇게 친구의 존재도 선택되어야 한다. 혹은 거의 그렇게 선택되어야 한다. 존재는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지각하기에 선택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지각은 그 자체 즐거운 것이다. 따라서 친구가 존재함을 함께 지각하는 일, '즉 서로가 존재함을 서로 알고 있는 일이' 필요한데 이것은 함께 삶과 서로 말과 생각을 나누는 일에서 성립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함께 산다는 것은 가축의 경우처럼 같은 공간에 배정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을, '즉 서로 말과 생각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과연 신적으로 행복한 사람에게도 존재는 본성상 좋고 즐거운 것이라 그 자체 선택해야 할 것이며, 그 다음으로 친구의 존재가 선택해야 할 것이라면, 친구 또한 선택되어야 할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신적으로 행복한 사람에게 선택되어야 할 가치는 마땅히 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이점에서 부족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행복하게 될 사람은 유덕한 친구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EN 9권 9장, 1170b1-19) [본문으로]
  15. 『순자』「부국」 [본문으로]
  16. 같은 책, 「영욕」 [본문으로]
  17. 같은 책, 「왕제」 [본문으로]
  18. 안네 마리 파이퍼 지음, 정영도 옮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에 대한 철학적 해석』, [5.종말인 : 삶의 형식으로서의 향락], 이문출판사, 1994, pp.90~95 참조 [본문으로]
Posted by Econom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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