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국어와 작문을 수강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아비투스의 내면화와 재생산
(박화성, 『바람뉘』의 비평적 고찰)
Ⅰ. 서론
전통적으로 여성 억압적인 한국 권력의 장 안에서, 하위 장으로서의 문학 장 안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어떻게 그려지고 읽혀 왔는가. 그에 대한 여성상을 분석하기 위해 본 글에서는 우선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빌려, 역사 속 타자였던 여성이 스스로 주체로 인식하고 사회의 제반 아비투스와 대결하는 과정에 주목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였던 여성이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남성이 매개체로서 설정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즉, 여성은 남성중심의 기존 가치체계를 그대로 이식하여 여성 스스로도 사회의 아비투스를 내면화하고, 그 결과 여성을 규정하고 억압하는 것들을 당연시하게 한다는 문제점을 밝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학 장 안에서의 여성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식민지 치하에서 강조된 모성을 논의 해보고, 박화성의 소설 『바람뉘』를 위에서 언급한 관점에서 비평적으로 고찰해보겠다.
Ⅱ. 아비투스
“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오늘도 유효하다. 지배는 물리력을 이용한 강제를 통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담론을 통한 설득에 기반하여 유지되는 법이다. 이에 하이데거는 ‘세론(Gerede)’에 관해 언급하며,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대중 들 사이에 떠도는 ‘세론’은 인간이 행동하는 방식, 특히 타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 속에서 물질적 형태로 존재한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습’ 개념을 받아들여 개인의 생활양식으로 기능하면서 생활양식을 성립시키고 있는 개인의 관습과 행동을 통일·생성하는 원리를 아비투스라고 하였다. 곧 아비투스는 ‘당연한 것으로 인정된 성향체계의 형태로서 사회구조가 체화된 것’을 의미한다.
문화 관습에 의한 ‘오인’임에 지나지 않는 현상을 자연스런 인지나 신체의 필연적 소산으로 생각하게 하는 아비투스는 첫째, 그 성원이 집단 밖으로 나가는 것이나 밖에서 아비투스의 집단 안으로 들어올 때 제어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거나 들어오려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체 인식을 근저로부터 뒤엎을 것을 요청하는 상징적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상징적 폭력이란 물물교환에서 이루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부르디외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상징적 폭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문화적으로 남성적인 것이라고 규정된 행위가 여성들의 일과 대립되고 있을 때에 비로소 지배의 원초적 형태가 발현되며 남성적 지배의 효과가 사회적으로 가능한 것은 지배관계가 육체적 관습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배관계는 노동분업이나 여성들의 존재양태, 또는 육체적 기능에 관하여 사회적인 규범을 여성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신비한 힘’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육체를 통한 지배의 관계는 그런 의미에서 제로섬의 상태가 아니라, 인정과 오인의 과정이 혼합된 복합적인 인간관계라 할 것이다. 특별히 여성이 사회로 진출하려는 경우에 아비투스는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을 유도하며 여성이 자신 속에 새겨져 있는 배제를 승인하는 것을 그만둘 것을 강요한다. (이에 관한 논의는 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푸른숲, 피에르 부르디외, 신미경 역, 『사회학의 문제들』, 동문선, 홍성민, 『문화와 아비투스』, 나남출판 참고)
Ⅲ. 1950년대 강조된 아비투스, 모성
식민지로 황폐화된 상황에서 광복이 되었지만 다시금 전쟁이란 한계상황을 겪은 50년대 한국소설에 나타난 여성상은 모성이 강조된 형상을 띤다. 그것은 아비 부재의 전쟁 상황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로 어머니가 설정되곤 하기 때문이다.
Ⅲ. 박화성,『바람뉘』에 대한 비평적 고찰
‘바람뉘’라는 말은 큰바람, 폭풍을 일컫는 말이다. 당대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박화성은 『바람뉘』에서 역사의 폭풍, 6·25와 그 와중의 삶이라는 폭풍 같은 삶 속에서 초점화자 장운희의 여성적 삶과 의식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장운희는 의사인 남편과 오빠가 북으로 끌려간 뒤 홀로된 어머니와 자식 부양이라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삶의 와중에 그녀는 점차 당연히 여성의 특성으로 되어 있는 아비투스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제반 여건에 저항하려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운희의 자각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황석이라는 남자의 존재라는 점이다. 역사 속 타자였던 여성이 드디어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하고 사회의 제반 아비투스와 대결하나, 타자였던 여성이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에는 결국 남성이 매개체로 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그녀의 다른 소설, 『하수도공사』에서 좀 더 확연히 드러난다. 동건과의 결혼을 꿈꾸는 용희에게 동건은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모든 장애를 돌파하고 자체를 개척하여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여성’이 되기를 바란다. 여성문제를 사회주의적으로 모색하여 계급해방을 여성해방보다 우위에 놓았기 때문에 드러난 한계점이다. 그리고 남성이 매개로 되고 있는 이유는, 사실상 박화성 자신이 남편의 사회주의에서 자신의 문학에 내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의 근원을 출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가 개인적이기보다는 이론적이며 시대적인 부분이라며 그녀를 옹호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부분의 여성주인공들이 스스로의 의식 혹은 자각을 실천에 옮기고 있기보다는 남성의 배경으로 머물고 있는 한계는 사실 사회 제반의 아비투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답습은 결국 문화적으로 다시 재생산되어 ‘세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람뉘』에서 드러나는 모성을 ‘의지의 미학’이라며 찬사하는 태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모성을 강조하는 아비투스는 일제의 여성정책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한일합방후 황국여성을 만들기 위해, 철저한 복종혁 여성상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면서 여성의 모성을 강조하였는데 그러한 결과 여성은 자신의 주체성보다는 가족과 모성 이데올로기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성으로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설정은 모든 문제를 여성에게 미루고 억압을 은폐하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모성 이외의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있는 소설이 여성문학적 관점에서 매우 의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참고 문헌
곽상순, 「모성적 전통지향의 소설화 혹은 정치적 보수주의의 문학화」
권명아, 「식민지 경험과 여성의 정체성」
문학이론연구회, 『담론분석의 이론과 실재』, 문학과지성사
사이드 에드워드, 『문화와 제국주의』, 窓
송명희·이태숙·안숙원 편저, 『페미니즘 정전 읽기』, 푸른사상
이태숙, 「여성문제의 사회주의적 모색」
조미숙, 「지식인 여성상의 사적고찰 -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푸른숲,
최일수, 「의지의 미학」
피에르 부르디외, 신미경 역, 『사회학의 문제들』, 동문선
홍성민, 『문화와 아비투스』, 나남출판
Mills Sara, 『담론』, 인간사랑
박화성(1904~1988)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 소설가로, 이광수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고통받는 도시 노동자나 농민을 주제로 한 소설을 썼고, 1945년 이후에는 서민들의 세대의식이나 애정문제 등을 다룬 소설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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