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세계외교사를 수강하며 작성한 발제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변환의 세계정치, 5장 국제냉전질서의 국제정치이론과 한국


 

본 텍스트의 구성

- 발제를 하는 본 텍스트는 저자(이근욱)의 주관적 생각에 따라 내용이 구성되어 있음

- 새로운 현실은 새로운 이론을 필요. 현실과 유리된 이론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논리적일 수 있으나 현실을 설명하고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험적인 차원에서 결과적으로 기각

- 현실주의이론은 민주주의 평화에 있어, 맑스주의 시각은 중국의 경제성장 측면에서 비판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 : 냉전에 대한 무도덕적 이해와 국제적 갈등

 

전통적 현실주의이론 : 모든 국가는 권력을 추구한다

현실

냉전의 발생

이론가

투키디데스Thucydides,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

전제

인간의 본성이 공격적이고 권력을 추구, 특정 국가의 도덕적 열망과 보편적인 도덕원칙은 다름

이론

현재 유지되고 있는 세력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현상유지정책status-quo policy, 현재 세력균형에 도전하는 현상타파정책revisionist policy

현실 설명

(냉전) 미국 현상유지정책, 소련 현상타파정책 추진. Not 악마적인 공산주의 세력에 대응하는 선량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대립 But 두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갈등

 

안보 딜레마 이론 : 원하지 않는 충돌

현실

1960년대 데탕트라고 불리었던 긴장완화와 미·소간 협조

이론가

허즈Herz, 로버트 저비스Robert Jervis

전제

한 국가의 군사적 준비가 다른 국가의 심리에 있어 그와 같은 준비가 단지 방어적인목적인지(불완전한 세계에서 자신의 안보를 증진시키려는) 아니면 공격적인 목적인지(자신의 이익에 맞게 현상을 변경하려는)에 대한 풀 수 없는 불확실성 존재

이론

자신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가 다른 국가들의 안보를 저해. 안보딜레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지리적 변수와 현재 상황에 대한 개별국가의 믿음 등과 함께, 공격수비 균형과 공격수비 구분 가능성

현실 설명

냉전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특이한 공격수비 균형과 공격수비 구분 가능성 상황에서 벌어진 의도하지 않았던 국제정치적 경쟁.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축적, 선제공격을 받고도 상대에게 보복이 가능한 핵무기 개발되면서 군사기술이 방어우위와 공격 수비 구분 가능 상황으로 변화. 따라서 데탕트는 소련이 공격적이고 팽창적인 현상타파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군사기술의 변화를 통해서 본래부터 현상유지 정책을 추진했던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확실하게 수용했기 때문 가능

 

신현실주의이론 : 무정부 상태에서 불가피한 국가간의 충돌

현실

미국과 소련의 데탕트

이론가

월츠Kenneth Waltz

전제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갈등 야기(본능무정부성 국제체제)

이론

무정부 국제체제에서는 정치적인 차원의 분업이 존재 할 수 없음. 국제정치의 변화는 강대국의 숫자로 정의되는 국제체제의 구조에 의해서 파악, 다극체제, 양극체제, 일극체제

현실 설명

불확실성이 강한 다극체제에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발발. 양극체제의 대립인 냉전시기에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등은 국제체제 전체를 포괄하는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았음, 쿠바 미사일 위기도 핵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음, 냉전은 안정적

 

강대국 순환론 : 패권국과 도전국의 순환

현실

중국의 쇠락

이론가

로버트 길핀Robert Gilpin

전제

강대국과 패권국은 순환

이론

위계질서에 가까운 무정부 상태. 과대팽창은 과대비용으로 인해 패권국은 결국 쇠태. 새롭게 등장한 세력균형에 적합한 새로운 국제체제가 만들어며, 이 과정에서 패권전쟁이 발생

현실 설명

16~17세기 스페인의 패권은 17~18세기 프랑스의 패권으로, 그리고 19세기 영국의 패권으로 변화. 이 과정에서 대규모 전쟁 수행. 또한 20세기 초 영국의 패권에 대해서 독일이 도전하면서 벌어진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패권국과 도전국 이외의 제3의 국가인 미국과 소련의 패권을 가져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패권국의 순환은 계속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 : 데탕트와 유럽통합, 그리고 국제협력

-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은 주로 국가간의 갈등과 경쟁, 전쟁이라는 현상에 주목.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주권과 권한을 다른 단위체에 이양하며, 군사력 사용을 제한받음.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론체계가 필요

 

통합이론 : 유럽국가들의 경제협력과 통합

현실

ECC, EU 등장

이론가

미트라니Mitrany, 하스Haas

전제

국제적 무정부 상태가 항상 갈등과 불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여러 방법을 통해서 협력하고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

이론

기능주의 - 중요한 행위자 Not 개별 국가 But 경제통합을 통해서 이익을 보고 더욱 높은 수준의 통합을 요구하는 국내 이익집단

신기능주의 - 어떠한 원인에서든 일단 창설된 국제기구와 그 구성원은 출신국가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더 높은 수준의 통합을 추진

이와 반대로 현실주의이론은 유럽통합은 개별 국가가 결단, 국가에서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이며, 각 국가와 정부의 이익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분석의 초점을 맞춤

현실 설명

확산효과와 국제기구의 역할에 따라 새로운 체제 건설 가능했음

 

상호의존이론 : 권력과 복합적 상호의존

현실

1970년대 미국의 경제적 우위 쇠태, 1차 오일쇼크

이론가

로버트 코헤인Robert Keohane, 조지프 나이Joseph Nye

전제

군사력에 기초한 힘과 경제력에 기초한 힘은 서로 다르며 동시에 서로 호환될 수 없음

이론

힘의 새로운 원천으로서 비대칭적 상호의존 제시. 중동국가들이 석유가격을 일방적으로 인상했을 때, 해저 유전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에 비해 자체 유전이 존재하지 않는 일본이 더욱 힘이 약함

현실 설명

군사적인 우위가 경제적 다극체제 구축을 막지 못했으며, 석유가격 상승이라는 문제에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음

 

제도주의 협력이론 : 국가들의 지속되는 협력

현실

1970년대 이후 데탕트 분위기가 확산되고 미국의 경제적 우위가 축소됨에 따라 다른 국가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아짐

이론가

코헤인Keohane, 오이Oye

이론 및 현실 설명

공동의 이익이 존재하지만 국가들이 협력을 통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는 원인은 거래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서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불확실성의 증가 때문. , 서로의 협력 의사를 확인하고 상대의 협력 행동을 확인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서.

대안

서로에 대한 감시와 상대방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 제거, 거래비용의 감소를 가져오는 국제제도는 협력을 촉진할 수 있음

 

맑스주의 국제정치이론 : 세계질서와 경제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

 

세계체제론 :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생산분업

이론가

칼 맑스Karl Marx,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월러스틴Wallerstein

전제

어느 정도 위계질서가 있으며, 이러한 위계질서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존재

이론

세계경제 중심부에 위치한 국가는 강대국으로서 세계체제를 관리하며, 주변부에 위치한 국가는 중심부 국가의 관리 대상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일어나면 과거에는 중심부 국가였지만 쇠퇴하여 반주변부로, 그리고 주변부 국가로 전락할 수 있으며, 동시에 반주변부 국가인 경우에도 발전을 가속화하여 중심부 국가로 부상하기도 함

 

종속이론 :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전략

현실

중남미 국가들의 쇠퇴

이론가

프랑크Frank

이론

후진국가는 선진국가에 값싼 자원과 노동력을 제공하게 되고 선진국가는 후진국가에게 효율성이 떨어지는 기술만을 이전하며 선진국가와 후진국가의 경제적인 격차는 줄어들지 않음

 

 

Posted by Economist21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08년 세계외교사를 수강하며 작성한 발제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변환의 세계정치, 1장 근대 국제정치질서와 한국의 만남


 

 

문명권의 정신구조

국가나 사회는 대외 문제에 대하여 무의식적인 충동으로 반응한다. 그런 반응은 그 국가나 사회가 지니고 있는 정신 구조의 발로이며 오랜 역사로부터 나오는 지적 유산이다. 나는 외교사 서술의 분석 단위를 국가로 하되 그 단위의 정신 구조를 형성한 문명권의 존재를 강조하는 입장을 견지한다.[각주:1]

 

인간의 역사는 사랑과 증오에 관한 서술이라는 김용구의 견해를 인용하면, 1장의 내용은 서구권 안에서만 지켜지는 근대서구국제질서와 대비되는 제국질서가 서양과 동양의 충돌로 이루어졌으며 서로가 자신을 보편이자 문명표준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상대방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그들의 증오가 폭력적 충돌로 이어졌고, 한국은 이 와중에서 타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 한편으로는 타자의 힘을 동경하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맛보았고 이것은 아직도 상호간의 신뢰회복과 소통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풀어가야만 할 현재진행형 과제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근대 서구국제질서

근대 이전 제국질서 : 제국의 중심을 지배하는 정치세력은 문명의 중심으로서 주변의 정치세력들을 위계적으로 복속시킴. 제국 내에서 복수의 평등한 정치적 권위는 인정되지 않음

근대세계질서 : 대내적으로 절대적이고 대외적으로 평등한 주권을 지닌 국가들에 의해 형성

15세기에서 19세기에 서구의 중세에서 근대로의 점진적 이행의 단계 : 주권국가간 국제질서와 제국주의가 동시에 진행된 서구국가체제의 이원구조

서구는 비서구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자기변환을 통해 서구의 기적을이룰 수 있었다

 

근대 국제정치질서의 성격과 팽창

근대국가의 발전 : 서구의 중세질서 근대 국가경쟁적 공존 국제질서

중세질서의 이원성 - 보편적 정당체계 : 단일한 기독교 공동체의 보편적 이념

- 분절적 지배구조 : 중세의 영토지배, 분절적·중층적 정치적 권위

대내적 주권 : 영토에 대한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지배의 권위

대외적 주권 : 복수의 (대내적) 주권의 독립성과 평등

근대국가의 발전은 ¹영토군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²그 자의적 지배를 제한.

¹ 영토군주 세력의 부상과 교권 하락 : 교황청의 아비뇽유수(1305~1378), 교회의 대 분열(1378~1417), 16세기 종교개혁, 프랑스 가톨릭과 개신교 내란(1562~1598)

² 민주주의 발전 : 영국 명예혁명(1688), 프랑스 대혁명(1789), 1848년의 혁명

서구근대국가의 발전이 지니는 근대성: 제국질서를 대체하는 주권개념, 신분에서 해방된 보편적 인간의 정치적 기획으로서 민주주의,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력의 자연적 한계를 극복하고 부의 생산과 분배에서 정치적 제한의 철폐를 요구하는 자본주의

세력 균형 : 서구의 정치적 분립은 강대국들의 세력균형에 의해 유지

- 절대왕정시대 : 단일 왕가에 의한 강대국들의 통합 가능성이 정치적 분립 위협

- 빈회의 이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정당한 세력균형의 현실적 기반은 영국의 패권, 유럽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서구국가체제의 이원구조, 서구 안의 국제질서와 밖의 제국주의가 영국의 힘에 의해 분절

서구제국주의 : 1815년의 빈회의가 서구 안에서 주권국가들의 협력을 제도화했다면, 베를린회의는 서구 밖에서 주권을 명분으로 주권을 박탈하는 서구제국주의의 집단적 위선을 제도화

 

전통적 중화질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질서를 도모하려는 유교적 사유체계에 기반. 따라서 천하질서에서 국가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주요한 행위자로서 용인되면서도 이념적으로는 근대국제질서의 행위주체인 주권국가처럼 강고한 배타적 실재로서 인식 될 수 없었음

중화질서 내부에는 주변부의 인식과 현실 간에 불가피하게 괴리가 발생할 소지가 항시적으로 존재하였으나 장기적으로는 예적(禮的)인 질서이념 하에 끊임없이 해소될 수 있었음

 

문명표준의 역전

이질적인 문명이란 하나의 문명표준에 의거해서 보면 대개 야만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음

서구 근대국제질서 원리에서 국제사회의 일원, 즉 국제법적으로는 국제법적 주체가 될 수 있는 요건으로서 문명이라는 자격요건이 요구 ; 동아시아국가들이 구미국가와 맺은 조약이 하나같이 일방적인 불평등조약이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문명적 요소의 미비라는 명분에 의한 것

서구의 국제질서와 전통적 중화질서의 만남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문명표준의 역전 현상을 가져왔음

중국 : 서구국제사회의 문명 표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근본적 어려움을 갖고 있음. 지금까지 중화문명권에서 문명표준을 제공하던 입장에서 유럽문명권의 문명표준에 의해 스스로를 재편해야하는 입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

일본 : 문명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게 되고 문명을 오로지 힘과의 관련성에서 이해하게 되었음. ‘개화의 등급으로 표현된 문명 대 야만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서구의 문명표준에 눈뜨지 못한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일본인들의 열등의식은 개화에 무관심한 조선이나 중국에 대한 멸시와 혐오의 감정으로 나타나게 됨

 

한국의 동요

중국과 일본은 이미 구미열강의 세계균형 속에 편재

중국 : 조공국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전통적 사대질서를 부정, 조선에 대한 종주권 기획(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직접 지배 강화, ·청상민수륙무역장정)

일본 :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적 근대화. 전통적 교린질서, 더 나아가 중화질서 전반의 전복 기획(강화도 조약을 통해 일본이 조선에서 중국의 종주권을 부정)

청일전쟁(1894)으로 이어지는 조선을 둘러싼 중·일의 대립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한 영국의 거문도점령(1885~87)이 상징하듯, 세계적 차원의 세력균형의 틀에서 이루어졌음

지역적·세계적 차원에서, 그리고 힘과 명분의 측면 모두에서 제국주의의 중층적인 압박은 조선의 독자적인 체제 변환의 가능성을 부정

 

세계대전

유럽문명권은 유럽 내에서는 주권국가간 관계, 국제의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지구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비서구지역에서는 제국의 모습을 추구하고 있었음. 이처럼 제국주의의 활극장이 되어버린 세계는 바야흐로 인류사의 가장 비극적인 시기를 맞이하게 됨

제국주의, 민족주의, 유럽 세력균형의 와해가 주요 요인

 

====================================================================

 

유럽에서의 ‘100년간의 평화[각주:2]와 이와 대비되는 제국주의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었는가가 이번 발제에 핵심이다. 대외적 주권이라는 복수의 (대내적) 주권의 독립성과 평등을 인정하는 경쟁적 공존 국제질서에서 어떻게 서구의 강대국들은 다른 문명권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행동을 취했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서로 다른 문명권의 정신적 구조에 따라 서로를 야만으로 규정하고, 서구는 다른 문명권의 국가들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발발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이원성은 근대국제질서 이전의 제국질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발제자 본인은 이러한 이원성이 인식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의 역사적 조건에 전체에 기반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요컨데, 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오랜 평화(혹은 백년평화)가 이루어지며, 밖에서는 제국주의의 팽창이 이루어졌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문명표준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윤에 동기가 있음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중세 봉건제

계급 : 영주-농노, 물리력에 의한 경제외적 강제[각주:3]에 기반

분절적 정치 구조 : 물리적 강제력, 즉 군사력 소유양식의 분산성[각주:4]

상품·화폐관계 및 농촌과 연결된 도시경제를 발전시키고 농민적 저항이 지배층의 양 보를 받아내는데 유리하게 작용함으로써 봉건제의 해체와 자본주의의 발전을 크게 촉진

국제 질서 : 새로운 영토 정복 전쟁의 각축[각주:5]

근대 자본주의

계급 : 자본가-임노동자, 자유로운 계약[각주:6]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반

근대 국가 : 일정한 영역 안에서 정당성에 의해 뒷받침되는 물리x    적 강제력을 효과적으로 독점한 제도적 지배기구[각주:7]

군사자원 및 군사기술의 혁명적 변화 : 기사군 중심의 군사양식의 퇴조와 보병군 중심의 군사양식 등장, 장창과 원시형태의 소총 및 대포가 기본무기로 사용[각주:8]

민주주의 : 자유로운 계약을 위한 신분적 해방(농노임노동자), 군사자원 확보를 위한 국가의 노력과 시민사회의 저항[각주:9]

민족주의 : 신분철폐를 부르짖으며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프랑스대혁명이 동시에 신분으로 나뉘어져 있던 프랑스 민족을 하나로 묶는 민족주의임을 상기, 하층민들도 프랑스의 시민으로서 나폴레옹 전쟁에서 모든 국민은 군대에 동원

무역의 자유주의와 보호주의 : 세계체제는 ¹자본주의의 호황 등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발전을 선도하는 나라의 세계적 헤게모니 하에서 자유무역주의적 질서가 민족국가들의 상호번영을 가능케 한 안정적 발전국면과 경제위기의 도래 등으로 각국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국가간의 갈등이 전쟁 발발과 가은 사태를 불러일으키며, 각국의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대중의 저항이 격화되는 대혼란 국면을 거치면서 발전[각주:10]

세력균형 : 각국의 부르주아지들은 이해관계상 전쟁보다는 산업, 무역 및 식민지 확장 쪽으로 19세기 국가의 정책을 방향전환[각주:11]

 

중화 질서

중화질서는 조공과 책봉에 기초한 봉건제 질서. 중화질서의 위협은 그들의 정신 구조를 형성한 문명권의 위협이자 경제정치체제 자체에 대한 위협. 봉건영주(혹은 지주)들의 반발은 당연

 

지난 4~5세기 동안 대규모의 전쟁과 그 전쟁을 마무리하는 국제적 협약들이 유럽식 근대국가 체제(국제정치적 의미와 국내체제 양면 모두에 걸쳐)의 모습을 결정짓는 결정적 계기였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들이 전쟁을 만들어 냈지만 동시에 바로 그 전쟁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국가들을 만들어 냈다고 하는 틸리(Tilly)의 말은 단순히 인상주의적 표현 이상의 말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태생부터 전쟁 지향적인 근대 국가는 비록 비스크마르크나 카부르가 상당한 진실성을 보여주었으나, 주권적 실체로서의 모든 국가의 평등성이라는 추상적이고 본질상 허구적 개념에 의해 오랜 평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경제적 이윤에 의한 자유주의가 그 기반이다. 다국체제에서 국민국가와 자본의 입장은 서로 상반되며, 이는 현 자본의 세계화와 대비되는 국민경제의 피폐성에서도 극명히 드러나는 문제이다.

 

 

국민국가(민족주의)와 자유주의에 대립에 기반한 연표

1776 아담 스미스, 국부론출판

1789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영국-대륙간의 무역 자유롭게 진행X]

1819 리카도, 정치경제론에서 비교우위론개념 등장 - 무역의 자유주의 주장

1839 콥든 반곡물법리그형성

1848 프랑스에서의 제2공화정 형성

1849 항해법 폐지

1853-54 영국, 프랑스, 터키, 러시아 크리미아 전쟁

1859 다윈, 종의 기원출판.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민족주의 형성 기반

1860 콥든-슈발리에 무역조약. 최혜국대우 조항

민족주의, 식민지 경쟁의 시작

1871 독일 통일.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 50억 프랑의 보상금과 알사스-로렌 지방을 할양받음, 그러나 과거의 영지를 떼어주는 개념이 아니라 민족을 분단, 전쟁 승리의 원인을 게르만족의 활력과 라틴족의 탈진으로 설명(사회진화론에 근거한 민족주의)

1873 뉴욕과 비엔나 증권시장 붕괴 보호무역 정책 증가, 영국은 계속 개방 일관

비스마르크 프랑스 고립,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 삼제동맹

1877-78 러시아 터기와의 전쟁 승리. 산스테파노 조약(78). 그러나 비엔나 회의를 통해 러 시아 발칸반도 진출 좌절

1879 비스마르크 무역 보호주의. 독일-오스트리아 이국동맹

1881 프랑스 관세체제

1894 프랑스-러시아 동맹 체결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러시아, 프랑스 분리 노력이 실패)

1892 메린느 관세제도

1895 막스 베버, 독일 제국주의 필요성 주장

1898 - 프 아프리카에서 충돌, 파쇼다 사건

- 스페인 미서 전쟁

1903 세르비아 군사쿠테타, 1878년 이래 친오스트리아왕조 붕괴

1900-14 자유주의 질서 절정기

  1. 김용구, 『외교사란 무엇인가』, 도서출판 원, 2002. [본문으로]
  2. K, Polanyi, The Origins of Our Time : The Great Transformation (Lodon, 1945), ch1. [본문으로]
  3. 토지 소유권, 인간의 인격적 소유 및 재판 행정권 E.A Kosminsky, Studies in the Agrarian History of England in the Thirteenth Century. [본문으로]
  4.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세력에 의해 당시 필요로 하던 군사자원(병력과 이의 유지에 필요한 물적자원)의 대부분이 제공되던 중기마병 중심의 봉건제적 군사양식에서는 군사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분권화의 경향이 불가피하게 된다. 다음의 문장은 초기의 서양 역사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사회전체는 끊임없는 사적 전쟁상태에 놓여있었다.” C.W. Previté-Orton, The Shorter Cambridge Medieval History, Vol.1: The Later Roman Empire to the Twelfth Century(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2), p128. [본문으로]
  5. 봉건제적 분산적 정치질서는 무력수단의 소우가 곧 생산수단 소유의 기반이 되고 또한 무력이 잉여생산 수취의 직접적 수단이 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역사사회학적 성격이 드러난다. 중세후기인 15세기까지 유럽사회에서 농업생산성과 무역량은 비록 정체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성장속도는 새로운 영토정복에 의해 얻어지는 수확에 비교할 때 여전히 대단히 느렸다. 앤더슨(Perry Anderson)의 말을 빌려 “당시 봉건제하에서의 지배계급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수단 중에서 아마도 가장 합리적이고 신속한 단일의 잉여수취의 확대양식이었다.” Perry Anderson, Lineages of the Absolutist State(London : New Left Books, 1974), p.31. [본문으로]
  6. 자본가-임노동자는 봉건제와 같은 인격적 예속에 따른 관계가 아니라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관계이다. [본문으로]
  7. Max Weber, Wirtschaft und Gesellschaft [본문으로]
  8. 이를 바탕으로 개인적 전사인 기사가 아닌 조직으로서의 보병군이 중심적 군사양식이 된 당시 상황에서 군사적 승패는 기본적으로 병력규모와 대규모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에 의존하였다. [본문으로]
  9. 새롭게 등장한 체제는 증가된 부담의 균등한 배분, 그 부담에 상응하는 정치참여의 권리부여와 부담에 대한 동의형성을 위한 정치적 제도 마련 보장하는 것이었다. 형평원칙에 입각한 부담의 배분은 지배층의 특권폐지를 바탕으로 하는 부담의 국민화로,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정치적 참여의 국민화를 낳았다. [본문으로]
  10. 안정적 발전국면의 세계체제는 그간 ¹네덜란드가 스페인이 주도한 중세적 세계체제를 해체시키는 데에 앞장서고 자유무역주의적 세계체제를 최초로 성립시킨 웨스트팔렌 조약 체결을 주도함으로써 수립된, 근대적 세계체제 초기의 ‘네덜란드 헤게모니체제’에서 출발하여 ²대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도하고,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이 된 영국이 자유무역주의적 세계질서를 회복시킴으로써 수립된 ‘영국 헤게모니체제’를 거쳐 ³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수립된 ‘미국헤게모니체제’로 발전해왔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공저, 『정치학의 이해』박영사, 2004. [본문으로]
  11. 그럼에도 19세기를 지나면서 나타난 수많은 영토분쟁, 외교적 사건, 식민지에서의 충돌, 지역적 또는 기타의 제한된 무력 분쟁들은 다국체제의 구조 안에 내재하는 긴장을 잘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G. Poggi, 박상섭 옮김, 『근대국가의 발전』, 믿음사, 1995. [본문으로]
Posted by Economist21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08년 서양정치사상사를 수강하면서 작성한 글입니다.


 

Thomas Hobbes의 정치사상


 

I.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의한 정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전복

 

 사회계약론으로 통칭되는 근대 정치철학은 근대 이전의 정치를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전복한다. 양자의 관계가 계승과 변형의 관계가 아니라 전복의 관계인 것은 근대 정치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근본명제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의 출발점은 인간은 본성상으로 정치적 동물”(정치학, 1253 a 2)이라는 주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공동체의 필연성을 인간 본성으로부터 끌어낸다. 정치공동체가 인간의 본성적인 욕구 속에 그 기초를 가지고 있으며(정치학, 1253 a 28), 정치공동체에 대한 참여는 삶의 목적으로 파악된다.

 중세의 사회정치철학 체계를 수립한 아퀴나스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한다.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유 관념으로 파악된다(신학대전 Summa theologica, IIa-IIae, quaest. 124, art. 4, ad 3; Ia-IIae, quaest. 92, art. 1). “정치적 동물테제의 핵심은 정치공동체의 개인에 대한 존재론적 우위이다. 정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틀 안에서 개인은 정치적 공동체로부터 독립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정치적 공동체에의 참여 없이는 개인의 인륜적 완성은 이루어질 수 없기에 정치공동체는 개인에 대하여 인륜적인 우위를 가진다.


 하지만 정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핵심은 오늘날 다양한 공동체주의자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공동체의 인륜적 우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즉 정치공동체에의 참여는 인간의 고유한 목적이기에, 정치공동체는 개인들에 대하여 존재론적인 우선성까지 획득한다. 정치적 공동체는 본성상 개인보다 선차적’(정치학, 1253 a 25)이다.

 

 근대 정치철학은 정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근본명제인 정치적 동물테제를 전복한다. 정치공동체는 개인에 대하여 존재론적 우위를 가지지 않는다. “정치적 동물테제의 전복의 결과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이다. 근대 정치철학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며, 정치공동체는 개인들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정치공동체는 홉스가 주장하듯 제작된 것이거나 로크, 루소와 칸트가 말하듯이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들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 근대 정치철학의 공통특징을 방법론적 개인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것은 근대 정치철학이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논증 목표는 개인의 우위에 머무르지는 않음을 암시한다. 근대 정치철학은 개인들로부터 출발하여 개인들의 결합으로서의 정치공동체를 논증하는 체계이다. 이는 자연상태, 사회계약, 정치공동체의 세 단계 논증구조를 가진 사회계약론으로 나타난다.


 자연상태는 사회계약 이전의 상태로서 개인들이 정치공동체 없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자연상태를 전제한다는 것 자체를 정치적 동물테제의 전복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근대 정치철학은 자연상태의 정당성에 대한 논증이 아니라 자연상태에 대한 극복의 필연성의 논증이라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근대 정치철학은 자연상태를 극복하고 사회계약을 통하여 국가를 수립해야 할 필연성을 논증한다. 이는 근대 정치철학이 국가의 정당성에 관한 논변이며, 지배의 정당성에 관한 논변임을 뜻한다. 근대 정치철학은 정당한 지배의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로 이 점은 근대 정치철학에 의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전복이 정치철학 체계의 출발범주의 문제만이 아니라 보다 심층적으로 논증목표와 관련된 것임을 뜻한다.

 


II. 지배의 정당화 논변으로서의 사회계약론

 

정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틀 안에서 지배나 강제에 대한 논변은 불가능

- ‘생성과 존재의 구분’ : 모든 생성은 오직 존재를 위한 생성’ (형이상학 IX, 8, 1050 a 4-9)

- 인륜적으로 좋은 삶은 폴리스의 존재근거’, 폴리스의 발생근거인 단순한 생존보다 우위

- 폴리스는 개인의 내적 목적’,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은 강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목적의 실현

 

17-18세기의 근대 정치철학: 사회계약론의 형태를 통해 지배에 대한 정당화 논변 제시

- 지배에 대한 정당화 논변을 제시한다는 것은 동시에 이와 같은 정당화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정당한 지배에 대한 저항 논거를 제시

- 홉스는 지배의 문제를 정치철학의 중심 문제로 끌어올린 최초의 근대 정치철학자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이 최고의 선과 관련된다면, 홉스의 정치철학은 '만인과 만인의 전쟁이라는 최악'을 막을 수 있는 평화의 수단을 구상

- 지배나 강제에 대한 논변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아리스토텔레스 목적론의 체계 전복은 기하학적 방법’(mos geometricus)의 도입을 통해 수행 : 발생론적이며 인과론적 방법, ‘사유실험

- 홉스에 의한 전복구조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국가공동체의 위상

그 자체로 인간의 목적이다

수단이다(목적-수단관계의 전도)

인간관

협동의 인간학(사회적 본성)

갈등의 인간학(만인과 만인의 투쟁)

폴리스vs개인

개인에 대한 폴리스의 우위

개인이 출발범주(방법론적 개인주의)

이성개념

이성능력과 이성적 판단 내용은 구분되지 않으며 통일된다 (phronesis)

이성은 전략적 판단을 위해 필요한 계산능력 (techne)

- 자연상태, 사회계약, 사회계약을 통해 수립된 국가라는 세 가지 단계의 논증구조 정치공동체의 성격과 상은 전적으로 자연상태에 관한 서술에 의해 결정

- 홉스와 달리 로크의 자연상태는 평화상태와 전쟁상태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어 자연상태를 극복한 정치상태인 국가는 제한적인 주권권력만을 가진다. 따라서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절대국가로 귀결되는 반면에 로크의 사회계약론이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헌법국가로 귀결

- 로크는 목적론 체계에 대한 전복을 본유관념론에 대한 경험론적 부정으로부터 시작(이성능력을 특정한 판단내용과 구분했지만 그가 이성을 홉스처럼 이기적 타산능력으로 환원한 것은 아니다)

- 홉스 이후의 사회계약론은 로크처럼 홉스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따르면서 자연상태관을 바꾸거나, 루소나 칸트처럼 사회계약론의 논증구조에서 자연상태관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사회계약의 논증적 역할을 증대시키는 전환을 시도

 


III. 지배의 역설

 

1) 강제력 없이는 사회적 협력체제가 있을 수 없다

- 자연권의 영구적인 상호포기가 평화상태를 수립하는 것 같지만 전쟁의 종식과 평화상태는 질적으로 다른 상태. 평화상태를 위해서는 생산, 분배, 교류의 협력이 필요. 홉스는 그와 같은 협력의 규칙, 곧 정의는 국가권력을 전제한다고 주장

- "정의롭다 또는 부정의하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계약을 어겼을 때 기대되는 이익보다 처벌의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계약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드는 강제력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러한 권력은 국가의 수립 이전에는 있을 수 없다."

- 이 역설은 이기적 개인들이 합리적 선택의 결과(교섭/타협)로 계약이 성립한다는 변명으로 해소한다. 그러나 비록 자연상태로부터 국가상태로의 이행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임을 재구성할 수 있다 할지라도 리바이어던의 제작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2) 절대권력자는 왜 만인에게 포함되지 않는가?

- 계약의 내용은 만인이 만인에 대해 만인과 만물에 대한 권리(1의 자연법)을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무한축적의 포기이며 자기통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만인대 만인의 계약이다.

- 그런데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단 한명의 늑대가 있다. ‘성 안을 어슬렁 거리는 늑대가 결국 주권자가 된다. 그런데 만약 계약에 참여하지 않은 늑대가 한 마리가 아니라면 어찌 되는가?

- 주권자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 안한 제3자이며 만인에 속하지 않는다. ‘만인이라면 모두가 하는 계약이어야 하는데 주권자만이 이 계약에 참여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연권을 포기한 상태에서 오로지 그 사람만이 자연상태이다.

- 홉스는 주권자가 왜 계약에 참여하지 않는지, 어디서 온 건지 설명하지 않는다.


 

IV. 지배와 민주주의

 

 먼저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철저히 근대적인 특징이라는 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대의 민주주의 개념은 인민(Demos)의 지배(Kratia)를 뜻하며 때로 폭도들의 수탈과 같은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 인민의 참여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민주정을 비록 참주정이나 과두정보다 나은 정체로 보지만 공동의 영역인 폴리스를 다수의 오이코스로 타락시키는 정체로 보았으며, 폴리스와 오이코스의 구분이 유지되는 군주정이나 귀족정보다도 덜 건전한 정체로 파악한다.


 정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가장 건전한 정체는 혼합정이며, 이는 폴리스와 오이코스의 엄격한 공화주의적 구분을 유지하면서도 군주와 귀족뿐만 아니라 인민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많은 참여를 보장하기 때문에 가장 우월한 정체로 파악된다.


 정체에 대한 가치 판단에서 제1기준은 폴리스와 오이코스의 구분이다. 양자의 구분을 유지하는 군주정이나 귀족정이 겉보기에 더 많은 인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정보다 우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제1기준 때문이다. 두 번째 기준은 인민의 참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제1기준과 독립적인 준거로 이해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여와 지배의 문제를 엄격히 구분한다. 모든 참여는 제1기준의 충족을 전제하며, 모든 지배는 제1기준의 위반, 즉 폴리스를 찬탈하여 오이코스로 만드는 행위로 이해되었다.


 이와 같은 참여와 지배의 대립은 - 앞서 밝혔듯이 -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틀 안에서 정당한 지배에 관한 논변이 등장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고전 고대적 어법에서 인민 지배로서의 민주주의 개념은 사적 이해관계를 벗어난 참여라는 공화주의적 이상과 충돌하며, 그러한 한에서 민주주의 개념은 공화국의 이념에 비하여 부정적인 문맥을 가진다.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 부여는 '지배 형식'으로부터 '결합 형식'으로 민주주의 개념의 전환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 홉스 이후 근대 정치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지배의 문제를 도외시했다고 보고 지배의 정당화 또는 정당한 지배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홉스의 정치철학은 대등한 주체들의 계약에 의해 수립된 국가적 지배가 계약에 참여하지 않는 제3자인 지배권력을 전제한다는 역설, 곧 지배의 역설을 보여준다. 홉스 이후의 근대 정치철학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로크의 정치철학을 지배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면, 루소와 칸트의 정치철학은 자유의지와 자기지배의 이상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결합 형태에 대한 모색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 개념을 자유의지적 주체로서의 개별자들의 결합 형식으로 전환한다.


 이는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칸트의 인륜의 형이상학에서 자연상태관보다 사회계약 개념의 논증적 중요성의 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회계약론의 논증구조에서 계약이 홉스, 루소, 칸트의 경우처럼 만인과 만인의 계약인가, 아니면 로크의 경우처럼 개인들의 자발적 동의를 의미하는가는 국가정당성 논거에서 중요한 준별성을 가진다.


 칸트는 로크처럼 만인과 만인의 계약을 개별적 동의로 치환함으로써 홉스 식의 절대국가를 방지하려 하는 대신에 만인과 만인의 계약의 상을 수정한다. 여기에서는 이성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홉스처럼 계산능력으로서의 이성개념에서 출발한다면 계약은 전략적 협상이 된다. 반면에 칸트처럼 정언명법적 일반화 능력을 가진 이성적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면, 계약은 전략적 협상이 아니라 자연상태의 결점이 보여주는 '공법에의 요청'에 따라 '모든 이의 결합된 의지'를 형성하는 것이 된다.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과 칸트의 '만인의 결합된 의지' 개념에 이르러 근대 정치철학은 정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틀 안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충돌, 곧 지배와 참여의 분리 문제를 해소한다. 홉스 정치철학에 고유한 지배의 역설도 결합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통해 해소되는 듯하다. 정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양립할 수 없고 민주공화주의는 역설이었지만, 거꾸로 근대 정치철학의 이상은 민주공화주의이다.

 

 비록 근대 정치철학이 루소와 칸트에 이르러 민주주의 개념을 자유의지적 주체로서의 개별자들의 결합으로 전환했지만, 결합 형식 자체에 대한 해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홉스에게 나타나는 지배의 역설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루소나 칸트는 사회계약에 불참하려는 개인들에게 계약의 참여와 준수를 강제해야 한다고 본다. 만인과 만인의 사회계약에서는 어떠한 예외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주권권력의 예외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듯하지만 개별적인 인간들에게 일반 의지만인의 결합된 의지는 외적인 것으로 등장할 수도 있음도 망각된다. 루소나 칸트는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 자기지배의 원리를 집단화하는 공화국의 이념을 통해 지배의 역설을 해결했다고 믿었겠으나 민주주의가 다수 지배의 원리가 아니라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의 원리라고 하더라도 이 원리는 직접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권권력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실현되는 원리일 뿐이라는 점에 대하여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지배의 문제로부터 결합의 문제로의 패러다임 전환 자체가 이미 결합 형식에 대한 해명이라는 과제를 해소시키고 있었다.


 이 문제는 오늘날의 민주공화주의에서도 해명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은 입법권을 가진 민주주의적 다수파가 함부로 할 수 없는 헌법적 기본권이나 인권에 호소하며 헌법국가의 옹호로 나타났으며, 좌파적 비판은 자유주의적 헌법국가 또는 근대의 '민주공화주의' 이념 그 자체에 대항하여 다수 지배라는 고전 고대적 의미로 민주주의 개념을 부활시키곤 했다. 결합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에 관한 탐구는 아직 전개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α 근대: 사적 소유(private 所有)와 군사자원

 

- 본래 사적(private)이라는 말은 그 어원이 말해주고 있듯이 무엇이 박탈된’(privativ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적 영역에 박탈되어 있는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타인이 보고 들음으로써 생기는 현실성의 박탈, 공동의 사물세계의 중재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분리됨으로써 형성되는 타인과의 객관적관계의 박탈, 삶 그 자체보다 더 영속적인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의 박탈이 그것이다. 고대 폴리스에서 사적영역은 박탈이 아니었다.

- 소유(所有)는 한자 개념이 암시하고 있듯이 장소의 가짐이다. 소유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점유 또는 부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은 고대 정치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그런데 근대의 자본주의 과정에서 소유는 점차 구체적 공간과 장소의 성격을 상실하고 자의적으로 점유, 처분, 양도할 수 있는 동산의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 봉건제에서는 무력수단의 소유가 곧 생산수단 소유의 기반이 되고 또한 무력이 잉여생산 수취의 직접적 수단이 되었다. 그런데 백년전쟁이 마감되면서 봉건제의 군사적 기반이었던 기사군 양식은 새로운 군사기술과 이에 따른 새 군사자원의 등장, 즉 화기 및 보병군의 등장으로 대체된다. 새롭게 등장한 체제는 증가된 부담의 균등한 배분, 그 부담에 상응하는 정치참여의 권리부여와 부담에 대한 동의형성을 위한 정치적 제도 마련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형평원칙에 입각한 부담의 배분은 지배층의 특권폐지를 바탕으로 하는 부담의 국민화로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정치적 참여의 국민화를 낳았다.

 

 

 

 

참고문헌

 

레오 스트라우스,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 아카넷, 2002

나종석, 홉스의 정치철학과 고전적인 정치철학의 붕괴, 사회와 철학 제6, 2003

박상섭, 근대국가와 전쟁, 나남신서, 2007

박홍규, 민주주의자 홉스의 리바이어던, 인물과 사상 93, 2006

볼프강 케스팅, 홉스, 전지선 옮김, 인간사랑, 2006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최명관 옮김, 훈복문화사, 2005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하권: 근세와 현대,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2007

조지 세이빈`토머스 솔슨, 정치사상사2, 송유보`차남희 옮김, 한길사, 2002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신재일 엮어옮김, 서해문집, 2007(영문판으로는 http://etext.library.adelaide.edu.au/h/hobbes/thomas/h68l/ 을 이용)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이진우`태정호 옮김, 한길사, 1996

A. 바루치, 정치 철학,이진우 옮김, 서광사, 1991

Posted by Economist21

댓글을 달아 주세요